PMM 2기 대만 의란교회 정해섭목사

 

안식일 아침 6시! 어제 교회 청소를 하느라 몸이 피곤할 텐데 오늘도 아무 말 없이 안식일 점심준비를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그렇듯이 모험이나 도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에게 PMM 선교사 지원은 처음부터 많은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저의 설득에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앞길을 막고 싶지는 않다.”라며 따라나선 길이였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선교사의 길은 처음부터 전혀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 길이기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 그리고 고민이 있는 길이어서 아직 6년의 반도 넘지 못한 짧은 선교사 경험이지만 이야기하자면 참으로 길고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문득문득 지나온 날들을 생각해 보면 재미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이곳 선교지에 도착해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라는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의 손안에 무엇이 들려있을까? 감사하게도 북아태지회에서 1년의 기회를 주셔서 언어를 배웠지만 여전히 서툴렀습니다. 문화, 지리, 지방 언어 등 여전히 여러 면에서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모든 일들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생각한 것이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먹회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때마침 한류 열풍을 타고 여러 사람이 한국 음식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조금만 사귀면 서슴없이 저희 식탁으로 초청했습니다. 참으로 느닷없이 사람을 불러들였습니다. 어느 때는 하루에도 두 번씩 손님을 초청했습니다. 그럴 때면 저희 집사람은 많이 난감해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도 손님 초대를 많이 해보지 않은데다 이제는 국가대표(?)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까지 있었으니 말이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친정어머니나 교회 집사님이 도와주셔서 담가 먹던 김치를 가르쳐 달라고 오는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학생이 하루아침에 선생님으로 변한다는 것은 아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희 집사람은 이제 식사 준비하는 데에 선수가 되었습니다. 몇 사람 식사에 초대해서 음식 대접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또 언제 무슨 일이 생겨도 척척입니다. 또 어느 때 누가 와서 김치 만드는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저희 집사람이 만든 김치가 먹어본 김치 중에 최고 맛있었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8시 30분! 아내가 음식을 식탁에 차려놓습니다. 벌써 오늘 안식일 점심 준비를 다 마친 모양입니다. 한 40명이 와서 먹어도 될 만한 풍성한 양과 맛깔스런 음식입니다. 오늘 많이들 와서 드셨으면 좋겠는데 어느 날엔 고작 서너 명만이 와서 식사를 하기도 하니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구도자들을 위해 아내가 저렇게 정성을 다해 식사를 준비했다는 것이 저를 마음 아프게 합니다. 사실 그 손님들(구도자)에 관한 건 제 몫이기 때문에 더욱 아내에게 미안하고 속상합니다. 어쨌든 아내가 해야 할 일은 이제 끝이 났습니다. 이제 제가 하늘의 양식을 어떻게 저들에게 잘 먹이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습니다.

저는 마무리 준비로 바쁜 아내 뒤에서 남모르게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오늘 제가 하늘의 양식을 잘 먹이도록 도와주세요. 아내의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아내가 더 많은 음식을 준해야만 하도록, 더 많은 사람이 말씀을 갈급하여 이곳을 찾도록 도와 주세요. 일은 힘들지라도 그것만이 아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로 강하게 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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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6월 전도회 때 침례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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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월 의란교회 주관으로 대만인 초중고 교사들과 대학생들이 한국문화체험과 전도회를 위해 한국을 방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