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오후,
차에 말썽이 생겨 수리를 하느라 예정보다 늦게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이번 방문은 거리도 멀고 길이 좋지 않은 많은 지역들을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차량 점검은 필수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간다에서 사온 중고 타이어에 문제가 있어서 다른 타이어로 교체를 하고
터보엔진의 바람구멍이 막혀 청소를 하고 다시 조립하는데
공구가 없어서 5분이면 끝날 일을 거의 두 시간이 걸려서 마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점심을 먹고 출발을 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어제의 여행으로 아직 피로가 덜 풀렸었고,
오전에 차량 수리 때문에 마음이 상해서 운전은 무붕가 선교사에게 맡기고
뒷자리로 가서 앉아 몸이 흔들리지 않게 안전벨트를 맨 다음 눈을 감았습니다.
물론 흔들리는 차 안에서 잠을 청하기는 쉽지 않지만
(콩고의 비포장도로를 경험하신 분만 아실 수 있습니다.)
이젠 어느정도 익숙해져서 선잠이긴 하지만 눈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얼마동안 달렸을까?
눈을 떠 보니 낮선 길이 나타났습니다.
부템보에서 출발한지 벌써 두 시간이 지나 처음가는 길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거의 한 달 이상을 보지 못했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지가 나지 않아 좋았지만 내심 미끄러운 길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렇게 약 한 시간을 더 달려서 드디어 첫 목적지인
무항기(Muhangi) 교회에 도착을 했습니다.

1. 팔루쿠 문두완디(Paluku Munduwandi) 선교사와 팔루쿠 카불로(Paluku Kavulo) 선교사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한 것이 출발이 늦어져서 오후 3시 30분이나 되어서야 도착을 했는데
무항기(Muhangi) 교회 교우들이 아침부터 아무데도 가지 않고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위치정보; 0.1/477N, 29.6.083E, 해발 1498m,
구글어스에서 [추가]-[장소표시]에 이 좌표를 입력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언덕위에 있는 교회까지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 내린 비 때문에 온통 진흙으로 변해 오르막 길이 무척 미끄러웠고
진흙 덩어리들이 신발에 붙어서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동네 꼬마들은 그 동네에 생전 처음 나타난 신기한 무중구들을 보느라
맨발로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교우들도 저희가 늦었다고 전혀 싫어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정말 진심으로 뜨겁게 환영을 해 주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을 나누고 저희 사역에 대해 소개를 한 다음
다른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숨바 선교사가 교인들과 함께 상담을 하고
저희는 무붕가 선교사와 함께 선교사 사택으로 가서 선교사와 개인 면담을 하였습니다.

특히 이곳에는 두 명의 선교사가 있었는데요,
팔루쿠 문두완디(Paluku Munduwandi) 선교사는 이 무항기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있고,
팔루쿠 카불로(Paluku Kavulo) 선교사는 이곳에서 또 다시 4시간을 더 가야 하는데
자동차가 갈 수 없는 곳이라 무붕가 선교사가 이 선교사를 이곳까지 오게 했다고 합니다.

팔루쿠 문두완디(Paluku Munduwandi) 선교사는 현재 33세로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큰 아이가 벌써 8살이나 되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 아이들이 다른 기후 때문에 많이 아프고 힘들어 했었는데
지금은 다 적응을 잘하고 건강하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는 이곳 무항기(Muhangi) 교회 외에도 부툼베(Butumbe) 교회를 함께 돌보고 있으며
도착한 다음부터 지난 2011년 후반기 6개월간 모두 3번의 전도회를 개최하였고,
23명의 침례자를 얻었습니다.
특히 맘붕구(Mambungu) 분교를 개척하여 벌써 어린이를 포함해서
안식일마다 78명이나 모이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교회의 발전을 저해하던 교인들간의 문제를 심방을 통해 해결하였고,
매주 세미나와 교우들과 함께 집집방문 활동을 하고 있고, 매주 구역반 활동을 하면서
교회가 교회다운 기틀을 마련해 가고 있었습니다.

한 예로서 선교사가 도착하기 전에 십일조가 매달 25불에서 30불 정도 되던 것이
현재는 매주 80불 정도로 증가를 했습니다.
성만찬 예식에 참여하던 교인들 수도 이전에는 70~80명 가량이었는데,
지금은 130명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돌보던 다른 한 교회인 부툼베(Butumbe) 교회가 바람에 무너져
교인들과 함께 벽돌을 굽고, 다시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 교회에서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는데 모두 5개 교실을 필요로 하는데
열악한 재정 형편때문에 건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어쨌던 이런 어려움들을 뒤로하고
교우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이곳 교회들의 밝은 미래가 보였습니다.


팔루쿠 카불로(Paluku Kavulo) 선교사는 현재 51세로 모두 4명의 자녀가 있는데,
교육문제로 혼자만 선교지 장로님 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혼자서 이렇게 먼 곳에 살고 있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모든 선교지들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선교사 파송지역은 대회에 전적으로 일임을 했었는데요,
젊은 사람들 대신에 이렇게 나이가 많은 선교사를 오지에 보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선교사는 마싱기(Masingi) 교회와 마팜보(Mapambo) 예배소를 돌보고 있습니다.
선교사가 도착하기 전에 대회(Mission)와 디스트릭(District)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관계로 돌봄을 받지 못해서
교회 교인들의 거의 뿔뿔히 흩어졌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교사가 파송된다는 소식을 듣고 교인들이 모여들어 지금은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으나
워낙 시골이고 농사철이 되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일을 나가서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마싱기 교회는 44명의 교인들이 있는데 현재 30명의 교인들과 38명의 어린이가 모이고 있고
마팜보 교회는 30명의 교인들이 모두 교회에 출석하고 있고, 어린이들도 20명 정도가 됩니다.
특별히 선교사는 이 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부흥세미나를 몇차례 열었고,
제가 강의했던 우정선교를 실천하여 현재 16명의 구도자를 확보했습니다.

특히 마싱기 교회는 교회가 자꾸 무너져서 재건축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교인들이 합심하여 벽돌을 찍었고, 이제 구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들과 상담을 마치고 선물을 전달한 다음 일어서려는데 식사 준비가 되었다며 먹고 가라는 것을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서 다음 방문지로 서둘러 가야 했기 때문에 양해를 구했습니다.

이미 시간은 4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온 길을 되돌아 가다가 미쉐네네 지역을 거쳐
약 6시 30분이 되어서야 다음 교회에 도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2. 카쿨레 키텡게라(Kakule Kitengera) 선교사

킴불루(Kimbulu)교회에 저희가 도착한 것은 이미 어둠이 내린 뒤였습니다.
(위치정보; 0.3.633S, 29.13.780E, 해발 1794m)
그런데 아침부터 저희를 기다렸다는 교인들은 여전히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선교사는 카쿨레 키텡게라(Kakule Kitengera) 선교사입니다.
올해 44세로 저보다 한 해 더 많은데 자녀는 7명이나 됩니다.
큰아이는 올해 중고등학교(Secondary, 여기는 중고등 6년제입니다) 6학년으로 19세나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사택을 따로 제공하지 못하고 방하나와 부엌 하나만 제공을 해서
아들 하나와 살고 있고 부인은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무척 곤단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거기다 혼자 있다보니 열 두 명이나 되는 창녀들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 마을은 특히 창녀촌으로 불릴만 한데요,
이 마을에만 무려 200명의 창녀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적부도덕이 심하고, 심지어는 교인 자녀들까지 이들의 영향을 받고,
교인들도 부패한 감화로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는 교인들의 영적기준을 높이기 위해 애를 썼고,
이 창녀들을 구원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선교사가 오기 전까지 지난 2년간 한 번도 전도회가 없었는데,
8개월간 계속되는 세미나들과 10개 반의 소그룹활동, 전도회를 통해서 33명에게 침례를 베풀었고,
올해는 3월 전도회를 비롯해 모두 4번의 전도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선교사는 무사사(Musasa), 이항고(Yihango), Masumu(마수무) 등
세 곳의 분교도 함께 돌보고 있는데
새로 또 분교를 만들기 위하여 땅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비록 44세의 적지않은 나이이지만 어려운 환경 가운데
불평하지 않고 겸손하게 성실히 일하는 모습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상담을 마치니 교인들이 우리를 위해 선물을 잔뜩 가져왔습니다.
상자에 담아 포장을 해서 저희들은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수 없었는데
무붕가 선교사는 그게 분명히 과일들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잠자리에 들기전 과일을 먹자고 가져와서 풀어보니 고사리가 잔뜩 들어있었습니다.
얼마나 우습고, 또 놀랐는지요.
이 사람들은 고사리를 먹지 않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저희를 위해 고사리를 꺾어 왔던 것입니다.

어쨌던 저희가 원래 계획했던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늦어 불가능했습니다.
그곳은 치안이 좋지 않고 가끔 반군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밤중에 이동하는 것은 극히 위험합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근처에 있는 제일 좋은 교인집으로 저희들을 안내했습니다.

제일 좋은 집이래야 다른 집들과 별반 다를게 없겠지만
그래도 든든한 철문이 있고, 콘크리트로 바닥이 되어 있다는 것이 큰 차이였습니다.
저희도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해서 매트리스와 담요, 모기장을 챙겨와서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큰 불편없이 그날 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일찍 선교사와 교우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다음 행선지로 출발했습니다.

두 시간 가량을 달려 저희가 도착한 곳은 킷숨비로(Kitsumbiro)지역의 지역장이신
은잘리타(Nzalita) 목사님 댁이었습니다.
저희가 그 지역을 잘 몰라서 선교사들이 목사님께 요청을 한 것 같았습니다.
원래는 저희가 이 목사님 댁에서 잠을 자기로 했던 것이라고 하네요.

이 목사님께서는 원래 지난 회기 대회 목회부장이셔서 저희와 친분이 많은 분이십니다.
그런데 저희가 도착하니 사모님께서 저희를 위해 풍성한 식탁을 차리시고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뜻하지 않게 풍성한 아침식사를 대접받고 선교사가 있는 교회로 목사님과 함께 이동했습니다.
한때 목회부장까지 하셨던 목사님께서 우리차를 같이 타고 다니시는 것을 무척이나 행복해 하셧습니다.
차는 커녕 오토바이 한대도 없으신지라 어디 이동을 하시려면
다른 사람들처럼 짐 가득 실은 트럭 위에 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동하는 내내 목사님은 선교사 칭찬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3. 팔루쿠 키텔룰리(Paluku Kiteluli) 선교사

저희가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그곳에서 남쪽으로 다시 한 시간 가량 달려서 도착한
은두타(Nduta) 교회였습니다.
(위치정보; 0.21.449S, 29.9.009E, 해발 2248m)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습니다만 여러명의 교우들이 저희를 반갑게 맞이 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는 팔루쿠 키텔룰리(Paluku Kiteluli) 선교사로
현재 50세 입니다.
이 선교사가 오기 전에 이 교회에서는 전도회도 전혀 없었고,
선교 활동이 거의 전무했습니다.
더구나 교인들 간에 분쟁이 있어서 전도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교사의 활동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고,
지금은 안정을 찾고 교회 발전을 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선교사의 활동에 감사해서 교회 옆에 있는 사택도 제공하고,
땅을 제공해서 농사로 필요한 채소들을 스스로 가꾸고 있었습니다.
가끔 교인들이 음식도 가져 온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는 이 은두타 교회 외에도 카하티(Kahati) 교회도 함께 돌보고 있는데요,
이 두 교회에서 지난 해 전도회를 개최하여 각각 4명, 5명에게 침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도 선교사가 오기 전에 매달 150불 이었던 것이 현재는 230불로 증가했습니다.
현재는 13개의 소그룹들과 함께 열심히 선교활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는 73명의 교인들과 67명의 어린이들이 안식일학교에 등록이 되어 있는데
현재는 모두 90명밖에 출석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우리 학교가 없어서 아이들이 다른 학교에 출석을 하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땅을 구입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선교사와 교인들과 상담을 마치고 이 선교사가 담당하고 있는 또 다른 교회인
카하티(Kahati) 교회로 이동했습니다.
역시 다시 남쪽으로 한 30분간을 더 달려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위치정보; 0.24.206S, 29.10.907E, 해발 2220m)
이 교회는 대로변 언덕에 위치한 교회로 저희가 도착한 소식을 듣자 교인들이 언덕을 달려내려와
춤과 노래로 저희들을 환영했습니다.

다음 선교지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지만
전혀 만난적이 없는 사람들이 어드밴티스트(Adventist)라는 이름으로
가족과 같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들과 선교사에게 복을 주셔서
크게 부흥하기를 기도하고 작별을 고했습니다.

4. 에페참바 초등학교(Epekyamba Primary School)

다시 북쪽으로 거의 두 시간을 달려 은잘리타 목사님께서 안내를 해주신 한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학교 이름은 에페참바 초등학교(Epekyamba Primary)입니다.
(위치정보; 0.13.754S, 29.14.220E, 해발 2256m)
목사님께서 이 학교로 저희를 안내한 것은 이 학교의 사정을 저희에게 알려주고자 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학교는 카시마(Kasima) 교회에서 시작한 학교입니다.
교인 수가 50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교회가 이 학교를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벽돌로 좋은 교실을 만들기 위해 교인들이 벽돌을 만들어 굽고
벽을 올렸는데 지붕을 올리지 못해서 애써 쌓은 벽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하게 아는 사람에게 갖고 있는 양철지붕을 빌려서 지붕을 올렸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것도 충분치 않아서 교실 한 쪽은 지붕은 아직도 다 덮지를 못했지만
교실 3개가 완성이 되었고, 이 교실을 다시 나누어서 6개 반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학생은 6개 반에 총 172명이고, 그 가운데 50명이 교인 자녀, 나머지는 비 신자들 자녀입니다.
또한 이 학교에서는 어른학교가 함께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
(CRJA-우리나라 야간학교 같은 학교로 공부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을 위해 만든 학교입니다.)
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48명인데 그 가운데 2명만 교인이라고 합니다.
선교의 기회가 무궁한 학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빌린 양철지붕을 돌려줘야 해서 목사님께서 저희를 안내하셨고
저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일산영어교회의 후원금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일산영어교회에서 지난 2년간 동전모으기를 해서 담임목사님이신 하홍팔 목사님을 통해
지난 목사님께서 방문하셨을때 전달을 해 주셨습니다.
이 정성어린 후원금이 이 학교의 건축에 사용되면 좋겠다고 생각이 된 것입니다.
아직 교회와 학교에는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저희가 곧 전달을 할 계획입니다.
이 후원금을 모아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은잘리타 목사님과 그곳에서 작별인사를 한 후에
저희들은 다음 선교지로 이동을 했습니다.

5. 팔루쿠 시에게(Paluku Siyeghe) 선교사

다음 방문지는 북키부대회에서 가장 높은 키페세 지역(Kipese District)으로
적도에 위치하고 있지만 대낮에도 10도를 약간 상회하는 쌀쌀한 지역입니다.
선교사가 돌보고 있는 부산자(Vusanza) 교회로
선교사 가족과 함께 몇명의 교인들이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위치정보; 0.15.190S, 29.17.760E, 해발 2502m)

이 교회는 제가 한국연합회 미디어센터에서 근무할 당시
연합회에서 양승천 선교사님을 통해 지붕을 후원한 교회로
2009년 초에 교회을 하였습니다.

선교사가 오기 전에 많은 교회가 반정도 밖에 차지 않았는데
현재는 안식일마다 교회가 가득 찬다고 합니다.
현재 교인은 119명, 어린이들이 49명 정도 모입니다.
십일조는 매월 평균 30불에서 선교사가 온 후로는 50~60불로 증가를 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15개의 소그룹이 활동을 하고 있고,
매주 가정당 100프랑(우리 돈으로 125원 정도)씩 모금을 해서
단상 부분과 벽부분의 공사가 덜 된 부분을 마무리 짓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두 번의 전도회를 개최하여 6개월간 24명의 침례자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전도하지 않던 성도들을 데리고
매 안식일 마다 구도자를 찾아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더구나 전도회 때문에 앰프가 없어서 다른 교회에서 빌려서 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구요.
하지만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선교사에게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선교사는 현재 이곳 부산자(Vusanza) 교회 외에도
키리키리(Kirikiri) 교회와 키시시(Kisisi) 예배소를 돌보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서둘러 선교사와 교우들과 작별을 고한 다음
다시 또 다른 선교사를 만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저희들은 선교사 방문 계획을 짠 무붕가 선교사와 무숨바 선교사에게
왜 이렇게 빡빡하고 힘들게 짰냐고 불평을 했지만
길이 너무 좋지 않기 때문에 같은 방향에 있는 지역들을 함께 방문해야지
이렇게 다니지 않으면 다시 왔다가 가려면 경비도 너무 많이 들고
몸도 너무 힘이 들어서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 방향을 정하고 그 길 위에 있는 선교사들을 쭉 따라가면서 방문을 하는데
이번 방문이 쉽지 않았던 것은 방문할 곳이 너무 많았던 것이었습니다.
어쨌던 시간이 쫒겨 투덜거리면서 다음 선교지로 향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점심도 먹지 못하고 계속 달렸지만
벌써 시계는 5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길 바닥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고 루캉가 대학까지만이라도 갈 수 있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6. 카쿨레 시키미뉴아(Kakule Sikiminywa)

카쿨레 시키미뉴아(Kakule Sikiminywa) 선교사가 봉사하고 있는
루싱가(Lusinga) 교회도 역시 이곳 키페세 지역입니다.
(위치정보: 0.11.250S, 29.18.113E, 해발 2665m)

이 선교사는 18명의 평신도 선교사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선교사(54세)로
학교 교사 출신인데요,
비록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두 번의 전도회를 통해 모두 20명의 새로운 신자를 얻었고,
최근에 또 전도회를 해서 8명의 새신자를 구원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또 군인캠프에 전도를 시작해서 1명의 군인이 침례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군인이 침례를 받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이 선교사가 온 이후로 십일조도 매달 40불에서 100불로 증가를 하였습니다.
저희가 방문을 하면서 십일조에 대해서도 점검을 하는 이유는
교인 수 뿐만이 아니라 영적으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루싱가 교회 외에도 무심바(Musimba)교회와 부로초(Vurotso)교회 등 세 교회를 섬기고 있고,
지난번의 보고에서도 잠시 소개해 드린 것처럼 일람불라(Ilambula)라는 지역에
전도회를 해서 분교를 개척하였습니다.
(지난 번 보고()를 참고하세요.)

하지만 이 새 분교에 교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교회들이 다 연약해서
건축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저희가 방문을 하면서 항상 부인들이 궁금했습니다.
쥐꼬리보다 못한 생활비를 받으면서도 이 일에 남편과 함께 감사하면서 참여할 수 있냐구요.
그런데 이 사모님은 남편보다도 더 적극적이더군요.
남편이 이쪽에서 전도회를 할 때 부인은 다른 곳에서 전도회 강사로 또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부창부수라 할까요?
그러고 다시보니 사모님이 낯이 많이 익었습니다.
저희가 이곳 저곳 전도회를 많이 다니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어디서인지는 모르지만요…

이분에게는 딸 만 셋이 있었습니다.
큰 딸이 중고등학교 5학년이고, 작은 딸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저희 딸 시은이보다 작은 아이들이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길에 비상용으로 준비해 간 사탕과 초컬렛, 껌을 몽땅 털어주고 왔습니다.

이 선교사들의 방문을 마치고 나니 해가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집까지는 적어도 3시간이 걸려야 하고,
그 길들이 험하기도 하지만 안전하지 못해서
결국 루캉가에 도착을 했을때 그날의 여행을 마쳤습니다.

저녁 7시,
하도 험한 길을 많이 달리고 흔들어놔서 온 몸이 뻐건하고 결렸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선교사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름다운 보고들을 받고보니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비록 점심도 거른채 방문했지만 배도 고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장의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PMM 제7기 콩고선교사 정효수, 김윤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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