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새 해가 밝아도 연수원은 바쁘게 돌아간다.
아니… 일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
두개의 건물에는 공부하는 학생들과 가르치는 선생님들, 일하는 직원들로 가득하다.
감사한 일은, 다음 주에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와서 침대 한칸의 여유가 없을만큼 더 바빠진다는 거다.
점점 더 연수원을 아시아 선교의 중심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더 커진다.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들에게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빠른 시일 안에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을 다른 나라의 선교사로 파송하고 싶습니다. 그곳에 영어 학원을 세워서 여러분들처럼 경험이 많은 Teaching Missionary 가 봉사하는 계획입니다. 가르치는 선교사들 10명을 보내고, 원장을 보내고, 직원들이 일하면서 그 지역의 선교센터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물론 방문을 목적으로 하는 1000명 선교사도 2명-4명이 함께 일하게 되는 계획입니다. 여러분들은 가르치고, 방문 선교사들은 그 학생들과 가정을 방문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계획입니다. 그런 학원을 남아시아에만 10개를 세우면 엄청난 선교의 붐이 불지 않을까요? 그 때가 금방 올 것입니다. 잘 준비합시다”
그 때는 그랬다.
이런 일들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국제관계학”으로 박사학위까지 공부시키시나라는 확신이 있는 때였다.
2020년 1월 12일 연수원에서 직선거리 20키로 정도 떨어진 Taal 화산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래는 그 날 하루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해 놓은 메모를 첨부합니다.
1월 12일 일요일 오후 4시경, 외부에서 지인들을 만나고 있는데 하늘에서 흙 비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뒤쪽 하늘을 보니 검은 구름이 큰 기둥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쪽에 ‘회오리 바람이라도 불었나?’ 라는 생각을 하는데 핸드폰으로 사진이 들어오고, 뉴스가 들어오는데 직경 20여키로 떨어져 있는 Taal 화산이 분화를 일으켰다는 내용입니다.
서둘러 차로 가는데 떨어지는 흙 비의 양이 점점 많아집니다.
우산이 없으면 걷기 힘들정도입니다.
시동을 걸고 연수원을 향해 급히 달려가는데 도로는 아수라장입니다.
차선은 떨어진 흙 비로 인해 보이지 않고, 화산 방향에서 내려오는 제 반대쪽 2개 차선은 어느새 제 차선을 침범해서 3개가 되어 있습니다.
그로인해 양방향 모두 속도가 너무 느리고 사거리에서는 신호 무시로 인해 차량 진행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평상시 숨어 있던 경찰이 오늘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도 않습니다.
급하게 연수원에 도착해서 화산폭발 이라는 걸 제대로 인지 한 후 마닐라 근교의 놀이동산으로 투어를 나간 팀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저희는 여지껏 잘 놀다가 이제 출발하려고합니다.”
다행히 그 쪽에는 큰 영향이 없는가 봅니다.
조심히 들어오라고 안내를 하고는 다음 단계로 상황파악을 해야합니다.
한국 포털 싸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아직은 큰 뉴스가 나지 않았습니다.
필리핀 현지 뉴스도 화산재가 날린다는 것 말고는 아직 별다른 뉴스가 없습니다.
그래도 안심 할 수는 없습니다.
식당에는 학생들이 도착하면 바로 식사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부탁하고
교사들에게는 화산재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창문등을 닫고
학생들이 돌아오면 화산재를 몸에 맞았을테니 식사하자마자 바로 샤워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목사님, 원래 저희 길은 화산이 있는 방향으로 해서 돌아가야 하는데 길이 너무 막혀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느라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한시간이면 오는 거리인데 그 쪽도 많이 막히나 봅니다.
건물을 깨끗하게 정리한 선생님들도 뛰어 와서는 이야기 합니다.
“목사님, 학생들이 화산재를 밟은 신발로 건물 안을 다니는 것은 좋지 않으니 신발은 건물 밖에 벗어두고 건물 안은 맨발로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먼지가 많아지면 좋지 않아서요”
이렇게 이런 저런 것들을 지시하고 확인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기가 끊어집니다.
지진 발생이 시작되었다면서 전력송출소가 전기 공급을 끊은겁니다.
급하게 남자 직원에게 연수원에 있는 비상발전기를 돌리라고 하면서 다른 직원에게는 남은 기름이 얼마 없을테니 나가서 되는만큼 기름을 사오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시간이 약 6시경입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버스에는 현재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지속적인 연락이 옵니다.
Carmona, SM mall, SSD, Robison …
길이 너무 막혀서 차량 이동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뉴스를 보니 8키로미터 반경의 사람들은 대피하라는 명령이 눈에 보입니다.
화산의 심각성을봐도 5단계에서 2단계입니다.
아직은 괜찮아보입니다.
잠깐 한숨을 돌리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아 참! 원래 계획으론 오늘 삼육보건대 간호학과 학생들 15명과 일반 성인들은 화산 구경을 갔어야 하는데…”
12일 일요일 어린 학생들은 놀이동산, 대학생 이상의 학생들은 화산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는데 분화 2일전 왜인지 모르게 갑자기 제 마음이 바껴서 대학생들 및 성인들은 모두 놀이동산으로 보낸 것이 생각났습니다.
짧게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하는데 여행갔던 버스가 도착하기 시작합니다.
버스 앞에서 선생님들이 우산을 들고 있다가 학생들을 강당으로 안내합니다.
차에서 자다가 일어난 학생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학생들을 강당으로 모은 후 상황을 설명하고 식사 후 샤워부터 하라고 안내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건물 밖으로 나가게 하지 말라고 지시하고는 서울에 있는 임원들 및 담당 직원분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몇몇 분의 부모님들이 소식을 들으시고는 연락을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네, 이제 학생들이 돌아와서 식사하고 방에서 샤워중입니다.”
“상황을 봐서 대처하겠습니다.”
등등 설명을 드렸더니
“잘 판단해서 해주실거라 생각합니다”
라고 말씀을 해주십니다.
8시가 넘어가는데 교사들이 연락을 줍니다.
목사님 3단계로 올랐습니다.
조금 더 있으니 4단계라고 합니다.
만일을 위해서 버스 회사에 연락했습니다. 그 때 시간은 오후 9:06분입니다.
“오늘 화산 때문에 버스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니에요…ㅠㅠ 기사가 지금 운행을 못할거 같다고 해서 거기 있다가 아침에 운행한다고 들었어요..”
“피해 없으셔야 할텐데… 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지금 학부모님들의 걱정 연락에 답하느라 정신이 없네요.”
“만약 급하게 차량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연락 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문자를 마친 시간이 9:06pm 인데 더 이상 답이 안옵니다.
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초등학생들 약 40명, 중고등학생들 약 25명, 대학생 및 성인 25명, 한국인 스태프 10명, 필리핀 교사들 50여명 의 대피 방법을 칠판에 그리면서 작전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9시 26분에 임원들과 상의하면서 아래의 것들을 제안했고, 부탁드렸습니다.
1. 연수원에서 평소처럼 생활
2. 만일의 경우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도록 조치
3. 귀국이 힘들면 북쪽으로 대피
로 방향을 잡고, 북쪽을 섭외중입니다. 잘 아시는 곳이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참고로 10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서 10시전에 교사들에게 학생들은 일단 방에서 자도록 했고, 룸선생님들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선생님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대기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던 중 10:56분에 버스회사에서 문자가 왔는데
“네, 최대한 도와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랍니다. 할렐루야!
11:22분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임원들에게
“내일이라도 비행기 뜨면 한국으로 모두 조기귀국 시켜야 겠습니다. 이제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닐라 공항이 안되면 클락 공항이라도 알아보겠습니다.”
사장님도 동의해주시며 한국 귀국편이 없어도 일단은 안전한 곳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렇게 확정된 시간이 11:43입니다.
버스가 오면 공항이 다시 열리고 새로운 비행기표를 구할 때까지는 거주 할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최소 10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울 사무실에서도 마닐라 근교의 호텔 및 리조트에 대한 연락처를 받아서 이쪽 저쪽에 전화했습니다.
그 시간이 12시가 넘었을 때입니다.
마닐라 공항에서도 한시간 이상 더 북쪽으로 올라가야 하는 한 리조트에서 수용 가능하다는 답을 듣고는
그리고 12:35분 버스 회사에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내일 오전 버스 2대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요”
“일단 마닐라 방향입니다.”
그런데 답이 오기를
“내일 오전에는… 지금 한국으로 못 나가신 분이 많아서 버스가 없어요. ㅠㅠ.. 오후는 되야 나올거 같은데… 내일 다시 한번 확인해서 얘기 드릴게요.”
랍니다.
그래서
“일단 제가 기댈 곳은 000회사 뿐입니다. 이곳의 한국 학생들만 약 100명인데 꼭 보내주셔야 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다시 부탁을 드리고는 약 바로 안 자고 있는 모든 교사들을 다 불렀습니다.
상황을 설명한 후 제 결정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 버스는 내일 와 달라고 했습니다.
- 리조트는 이제 확정해야 하지만 지금 찾은 곳은 다행히 100명 정도는 수용 할 수 있답니다.
- 내일 아침에 학생들이 눈을 뜨면 7시에 성인/중고등부 학생들과 그 담당 선생님들을 다 불러주시고 초등학생들은 8시에 모아주십시오.
이렇게 회의를 마쳤을 때 시간을 보니 3시가 넘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선생님들과 간절히 기도회를 했습니다.
“약 2천년전, 예수님 부활하시던 그 아침 수 많은 사람들이 지진을 느껴서 두려워 했을 때, 믿음의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났습니다. 하나님, 오늘의 화산/지진/화산재 등이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고 희망이 되도록 하옵소서”
그 이후 잠깐 사무실 소파에 앉았는데 잠이 들었나봅니다.
5시가 되어갈 때인데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사에에도 많이 흔들리기는 했는데 이건 너무 많이 흔들립니다.
자던 선생님들과 어른 학생들이 로비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들에게는 지금보다 조금만 더 심해지만 자던 학생들 다 깨워서 운동장으로 모이도록 하라고 다시 지시하고, 한국인 선생님들에게는 아침에 아이들이 눈 뜨자마자 아침 식사부터 하도록 하고, 가방 싸는 것 도와주라고 했습니다.
아침 7시, 강당에서 중고등부, 대학생, 일반부, 담당 선생님들을 모이도록 한 후
“여러분 어제 지진 때문에 못 주무셨지요.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이곳을 비우고 마닐라 쪽으로 이동하도록 결정했습니다. 리조트를 예약하기는 했는데 시설등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혹시 불편하신 어른 분들은 별도로 호텔을 잡으셔도 됩니다. 이 안내가 마쳐지면 모두 식사하시고, 방으로 들어가서 짐 싸고 버스 오기를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 이후에 필리핀 선생님들만 남게하고는 다시 안내 했습니다.
“여러분, 정말 미안하지만 이번에 나갈 때 여러분들까지 같이 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필리핀 분들이시니 오전에 급여를 정산 받으시고 안전한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이동할 때 필요한 경비는 제가 별도로 드리겠습니다. 혹시 멀리서 오셔서 당장 갈 수 없어 이곳에 머물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하십시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눈물이 흐리기 시작하는데…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에게 Pastor Song, 이라고 불리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의 목사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학생들부터 먼저 복귀 시킨 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하루 이틀만 기다려 주십시오.”
주니어 아이들에게도 같은 안내를 하고, 필리핀 일반 직원들에게 같은 설명과 사과를 했습니다
오전 11시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받은 수천개의 문의, 걱정, 안부 등등의 연락에 대답하고, 피난 가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도록 한국인 직원들을 확인하고, 학생들을 확안하고… 정신 없는 시간이 지나갑니다.
짐을 싣고,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지금의 상황이 아쉽고, 무섭고, 서운하고… 의 감정을 가진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서로 안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서둘러 버스에 탑승하도록 안내했습니다.
필리핀 선생님들과 직원들에게는 너무 미안하다고 머리 숙여 사과하며 마지막으로 연수원을 나서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리조트에 4시 넘어서 도착한 후 4인실과 6인실 방으로 24개를 빌렸습니다.
인원을 확인하니 모두 94명입니다.
서울에서도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를 찾았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임원들과 밤새 회의 하면서 결정하고, 비행기 수배하고, 버스 요청하고, 리조트 빌리고, 94명을 인솔하고, 선생님, 직원들 급여 정산하고, 건물 안전 확인하고… 정신없는 24시간이었습니다.
학생들 저녁 먹는 것을 확인하고 8시 방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집니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 하나의 결정으로 수 많은 사람의 안전이 결정되고, 나 하나의 결정으로 50여명의 직원 및 선생님들을 두고 나오고, 나 하나의 결정으로 94명의 사람들이 피난민이 되었고…
갑자기 긴장이 풀어졌나 봅니다.
그렇게 바닥에 앉아서 잠깐을 울고는 다시 학생들의 인원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15일 오전에 19명이, 오후에 45명을 한국으로 출발시키고 중간에 돌아간 사람들을 뺀 장기생 등 26명을 다시 데리고 연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우리가 돌아 올 수 있도록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는 화산재를 모으고, 삽으로 푸고, 물로 씻어내고… 청소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또 얼마나 고맙고 미안한지요.
어제(16일) 저녁 남아 있는 24명의 선생님들을 근처의 카페로 모시고 가서는 머리 숙여서 감사를 표했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우리가 모두 안전하게 학생들을 귀국 조치 시킬 수 있었고, 부모님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제가 대표하여 받았습니다. 다시한번 너무나 감사합니다”
15일 돌아와서 2일밤이 지난 지금,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발전기로 생활하고 있지만 특별한 문제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지진도 느껴지지 않고, 어제 화산에 가서 보니 땅 속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눈에 보이는 특이한 징후도 없었습니다.
16일 밤에는 한국에서 한 어머님이 보내주신 마스크 상자도 선물 받았습니다.
수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셔서 기도해 주셨고, 걱정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모든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2일 밤 기도회 시간에 드렸던 기도처럼 이번의 화산/지진 등이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