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야오” (켄야) 선교 방문: 선교보고 <2009-3>

 “콘야오” 가 케냐의 어디에 있습니까?  케냐 분들도 잘 모릅니다.
투르카나, 포콧 은 누구나 안 가봤어도 아는데, 콘야오 는 모릅니다.

 위치:   수도 “나이로비” 서북쪽 (10시 반 방향) 470 키로 가서, 좌 회전 서쪽으로 30 키로 갑니다. 
우간다 국경이 3키로 됩니다.

나이로비서 서북으로 350 키로 가서 큰 도시 “엘도렛”, 계속 70 키로 가면 “키타레” (여기 까지는 지도에 나옵니다), 계속 50 키로 가면 작은 도시 “마쿠타네” 에서 좌 회전 합니다. 사진은 여기서부터 입니다. 여기 까지는 포장 된 도로 입니다.

 이미 선교보고 <2009-2>에서, 케냐의 북쪽 끝에서 245키로 내려온 로드와 에 대해 보고 했습니다. 이제 로드와 에서 저녁 6시 버스를 타고, 남쪽 “키타레” 까지 밤새고 350 키로 갑니다. 아침 버스와 저녁버스 두 차례 있는데, 낮 버스는 너무 더워서 밤 버스를 택했습니다. 아주 길이 험하고, 먼지 길이라 빨리 달리지 못 합니다.

 겉으로는 그럴 사 한 버스인데, 타자 말자 내리고 싶은 충동 입니다. 그러나, 선교사 인데, 연합회 총무부장 마코리 목사님, 합회장 미소이 목사님, 재무 보아즈 다 함께 타서 견디는 수 밖에 없습니다. 2명, 3명 한 줄에 타게 좌석이 되어 있는데, 하필 제 자리에 또 거인과 꺽다리가 배정 된 겁니다. 저는 밀려서 엉덩이와 어깨가 똑바로 되질 않습니다.

 콩고에서도 잘 견디든 냄새가 오늘은 유난히 힘 듭니다. 잘 안 열리는 창문을 여니, 모래 도로를 달리는 버스 바퀴에서 생긴 흙 먼지가 하필이면 제 창문으로만 꼭 스며드니, 뒤에서 창문 닫으라고 호소 합니다. 창문 닫으면 덥고, 냄새가 유난히 더 나고, 인간의 참는 한계에서 잠이 듭니다.

 350 키로 를 달리는 중간지역은 사람이 잘 살지 않는 지역이고, 무장 강도가 자주 출현해서, 케냐 무장 군인이 꼭 2명씩 버스에 배정 됩니다. 이제야, 합회장님 일행이 합회 봉고를 키타레에 주차하고, 버스로 온 이유를 알았습니다.

콩고서는 전쟁 폭도에 시달리고, 케냐서는 무장 강도들에 시달리는 것이, 땅끝을 염두에 둔 선교사의 필연인 모양 입니다.

 투르카나에 먼저 도착한 합회장님 일행이 전화로 너무 더우니 복장을 가볍게 입으라는 권고에 순종했는데, 키타레가 높은 산 꼭 데기 인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새벽 4시 반에 도착해서 자유와 신선한 공기를 만끽 하려 밖에 나오니, 너무 추워서 다시 냄새 나고 따듯한 버스로 들어가, 아침 7시까지 잠을 청 합니다. 이 때야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었습니다. 먼지로 분을 발라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 입니다.

 운전수는 알기 때문에 발동 끄고 아주 집에 가 버렸습니다. 승객의 반은 저희와 같이 아침이 되길 기다리며, 버스에 그대로 있습니다. 냄새 나고, 텁텁한 내부 공기가 추운 바깥 보다 좋습니다. 7시에 아직도 추워 벌벌 떨며, 호텔을 찾아 더운 샤워를 즐겼습니다.

 왜 하필 이곳을 갔나요?

여러분 외방 선교를 다녀 왔는데, 누가 왜 하필이면 그곳을 갔다 왔느냐 하면, 말문이 막힙니다. 저 더러 왜 하필이면 콩고 선교사로 갔느냐 물어 보시면 당장 시원 한 답을 못 합니다. 신학 대학원에서, “성령님께서 인도 하셔서 갔다 왔습니다” 라는 대답을 배웠습니다.

 작년에 BMW 전 경수 목사님 말씀이, 어느 추장이 1천 에이커(약 123만평, 골프장 4개) 땅을 여성 전도자들이 다녀 온 후에 기증을 받었다 하여, 납득이 잘 안 가서 확인 하고 싶었습니다. 또 사실이면, 왜 추장이 이렇게 큰 땅을 자발적으로 증여 했는지가 궁금 했습니다.

 기후, 지리 여건:  “투르카나” 와 비슷한 기후 조건이지만 조금 났습니다. 트루카나 는 1년에 4-5월에 1-2번 비가 오고, 급히 홍수가 지는데, 여기는 4-8월이 우기이며 비가 더 많이 오며, 홍수가 덜 납니다. 조금 덜 덥고, 촌락을 이루어 살고, 처음 4-5장 사진에 오른 쪽 보이는 산맥이 북쪽, 동, 서쪽 이, 전부 산으로 둘러 쌓였으며, 남쪽으로는 뚤렸습니다. 그래서 여기가 유명한 켄야의 “Rift Valley” (땅이 움푹 꺼진 지역) 의 시작 지점 입니다.

 BMW가 마사이 족 선교를 작년부터 시작 했는데, 마사이 족은 다른 족속을 다 피해서, 지금은 푹 꺼진 광활한 지역에서 뜨겁고 물이 없지만 평화롭게 삽니다. 마사이는 용맹스럽고 전투에 강한 족속이나, 타 족속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 합니다. 원래는 거의 모든 케냐의 땅이 마사이 족 땅이었고, 나이로비, 특히 지회가 위치한 “온가타 롱가이” 는 얼마 전까지 마사이 땅이었습니다.

 도착하니, 평신도 대표자 3분이 반갑게 맞이 하고, 그 없는 살림에 마실 것, 비스켙 등을 준비하여 저희를 환영 합니다. 저희는 밤새 버스를 타고 오고, 다시 합회 차를 타고 4시간을 또 온 겁니다. 다행히 키타레 중앙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교회에서 뜨거운 아침을 준비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 합니까?

 “콘야오” 는 2년 전 키타레의 몇 교회 “도르가” 에서 푼 돈을 모아 전도회를 왔습니다. 그 후에 현지 딱한 사정을 파악한 도르가 대표들이 가끔 식량과 옷 가지 등을 모아 와서 도와 줬고, 교회를 교인들과 같이 지었으며, 벽돌은 교인이 만들고, 벽돌 굽는 비용은 도르가에서 도와 줬습니다.

 이 사정을 본 추장 “이와팔레” 가 1천 에이카 를 증정 한 겁니다. 속셈은 물을 공급 받고 싶었고, 학교를 지어 주며, 양식 해결을 해 주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도르가 에서는 2년 정도 지내도 시원한 도움이 없고(추장 눈에), 작은 교회나 지으니, 200 에이카는 놔 두고, 800을 가져 간 겁니다. 저는 이제 재산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집에서 매달 도와 주는 생활비로 연명하나, 부동산에 대한 집착은 남아서, 추장을 일부러 찾아가 어름짱을 한바탕 놨습니다.

 믿음 받아 드린 후에는 한 없이 바보가 됐고, 모든 것을 포기, 양보하는 머저리 되도 좋은데, 선교를 위하고, 교회를 옹호하는 일이면 다시 공격적으로 됩니다. 믿음 받아 드리기 전의 습성이 조금 나와서 아직도 성화된 삶의 완전을 향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아마 오랜 신앙 생활을 한 분과 저와 같이 설 익은 신도들의 차이인 모양 입니다.

 아무튼, 추장의 말로는 다시 800 에이카를 돌려 주겠다 합니다. 네 것을 돌려 주는 게 아니라, 내 것 훔쳐간 것을 정상으로 회복하라 했습니다. 이상하게 저의 공격적이고 협박적인 태도에도 맞 서질 않고, 자기네 동네서 고분고분 합니다. 같이 사진 찍고, 악수 했습니다. 마음과 말이 바뀌는 추장이 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기는 안 변한 답니다. 제 느낌에 800을 반환 할 것 같습니다. 합회장님께 빨리 등기 하시라 부탁 했습니다.

 “콘야오” 교회로 갔습니다. 감격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의 대부분이 곡식과 먹을 것을 찾으러 국경 넘어 우간다로 갔다가 비올 계절에 돌아 온답니다. 이 들도 일종의 유목민 생활을 합니다.

 나머지 몇 안 되는 교인들을 평신도 목회자 죤키인 마사이(이름), 간호사 겸 약사 로버트, 마태 장로 세 사람이 아무 재정적 보조 없이 헌신을 하고 있습니다. 로버트만 조금 어떤 의사 한데서 보조를 받는다 합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평신도 목회자 죤키인은 먹을 양식이 없어서 자주 굶는다 합니다. 표시도 잘 안하고, 저희를 잘 대접하는 그 마음씨에 탄복 합니다. 선교를 다니다 보면 이렇게 십자가를 진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고개를 들 수가 없군요.

 케냐는 지난 몇 달 동안 가물어서 국가 식량 대난을 선포 했습니다. 보통 때도 양식이 모자란 이곳에, 가뭄으로 끼니를 굶는 어린이 들이 배고파서 교회로 많이 찾아 온 답니다. 교회에는 먹을게 있을 리 없지요. 현지 교인 테레사 아주머니 말 입니다.  BMW에서 급히 굶는 어린이를 위하여, 합회를 통해 긴급식량을 전달 했습니다. 평신도 목회자를 도울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하자 했습니다. 이제야, 요나를 이해 합니다. 니느웨로 가라 하시는데, 여호와의 얼굴을 피해 반대로 간 요나를 동정 합니다.

 1천 에이카 땅에 흥미와 호기심이 있어 왔는데, 오지 않았을걸 합니다. 안 왔으면 알 수가 없고, 안 알면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어쩌다 와서 알았으니, 능력은 없고, 이 모든 모습이 지금까지 살아 지지 않는 이 안타까움에 기도 밖에 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잠깐 한 눈 파시는 동안에 안 왔었으면 합니다. 회개 합니다.

 자기들도 어려운 가운데 이들을 묵묵히 도운 키타레 교회의 도르가 두 여인, “헤피사바” 와 “아비게일” (사진 7), 끼니를 굶으며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헌신하는 세 평신도 지도자 (사진 6), 손님이 오면 자기 가진 것 중에 하나를 나누는 전통을 가져, 저는 한 게 하나도 없는데, 표주박 선물을 주는 테레사 아주머니…이 헌신을 제게 보여주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뒤늦게야 조금 알듯한 얇은 신앙. 여기를 안 왔으면 진정한 십자가를 멘 하나님의 일꾼을 어디서 만나보는 영광을 가집니까?

 여기를 자주 오고 싶습니다. 십자가를 멘 분들의 십 분의 일이라도 되고자 합니다. 여러분 작년에 “나체족 룩바라” 의 교회 “벧엘” 을 기억 하시죠. 거기도 자주 가고 픈 곳 중의 하나 입니다.  이 경제적 어려움에 기술 고등학교를 짓고 있습니다. 막연하게 지금 공사 시작한지 달 반 인데, 소문이 퍼져서 먼 곳의 학부형들이 아이들을 이 학교에 보낼 테니 집이 멀어서 기숙사를 마련해 달라는 겁니다. 정말 즐거운 비명 입니다. 이곳 사방 3-40 키로 내에 고등학교가 없기 때문 입니다. 이를 위해 헌금해 주신 분과 BMW에 감사 합니다.  고등학교 시작과 동시에 쉽게 200여명은 학생들이 올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콘야오” 에도 일어 났으면 좋겠습니다. 물을 공급 하고, 학교 세우면 이들은 다 재림교인 되어 구원 받습니다. 꼭 재림 교인이 되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물이 있으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는 곳 입니다. 추수 할 일은 많고, 일꾼이 없는 실정에, 일꾼은 있는데 추수할 일꾼이 굶어서야 됩니까?

 800 에이카 가 반환 되면, 등록세가 들어도 등기하신다고 지회장 님이 다짐 하십니다.

 다음 주 에야 이번 선교방문의 마지막 지역인 서 포콧 의 “로무트” 를 보고 합니다. 내일 아침 새벽엔 탄자니아의 마사이 지역을 선교 방문 하기 때문 입니다. 케냐에는 마사이가 1백만, 탄자니아에는 6백만 입니다. 모두 7백만을 전도 하는 것이 BMW의 목표 중 하나 입니다. 시작 하는 일꾼이 있어야, 마치는 분이 이지 않습니까? 뿌리고 추수가 다 이런 뜻인 모양 입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하더군요.

 콩고 선교사,  BMW 아프리카 연락 원,  양  승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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