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는 지금 안전 한가?
 
콩고 입니다.    12월 28일    
 
12월 10일 켄야의 수도 나이로비의 외곽에 있는 지회 에서, 고향 콩고의 부템보 시로 왔습니다. 부템보 에는 물론 “마하” 선교의 콩고 지부가 있는 곳이고, 콩고 선교사 3명, 대회서 정식 파송 받은 목회자 한분 이렇게 4명이 계속 마하선교 지역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이렇게 잘 도착하여 보고를 드리니 콩고는 우선 선별적으로 안전 합니다. 12월 24일 오후에야 인터넷이 콩고 온후 처음 개통되어 선교보고를 할 수 있습니다.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여 주시고, 마하 선교사, 현지 목사님 다 무시하게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CNN, BBC 뉴스를 보면, 콩고와 우간다 국경이 폐쇄 됬다고 하나, 이 폐쇄된 국경은 우간다의 제일 남서쪽, 콩고의 동 북부, 고마시의 북북동쪽 (약 100km)에 위치한 “이샤샤(Ishasha)”라는 국경 입니다. 뉴스를 보면 한번도 현지에 들어와 취재한 것 같지 않고, 고마 시 의 난민 수용소, 유엔군 정도의 정보 만으로 보도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카신디”라는  콩고와 우간다 국경을 통해 입국 했습니다. 우간다 수도 “캄파라”에서 약 350km 서서남 방향 입니다. 뻐쓰로 새벽 6시 출발 오후 2시경 국경에 도착 했습니다.
국경에서 3-4시간 아무 이유 없이 지체 당하다, 허가 받고, 110km 밖에 안되지만 6시간 걸려 험한 그러나 익숙하던 콩고 길을 6-7번의 검문소를 통과하여 무사히 도착 했습니다.
 
첫재 지금까지는 “부템보” 시 는 안전 합니다. 제가 2006년 12월 11일 처음 입국 할 때는 내전이 시작하여 모든 외국인이 다 떠난 후 11년 만에 처음 “무증구” (비 흑인)가 왔다 했는데, 지금은 많은 NGO, 구호 기관들이 들어 오고, 부유한 콩고사업가 들도 들어 와서 북적 입니다. 부템보의 사업가 들이 돌아 왔다는 것은 좀 더 안전하다는 증거 입니다.
 
12월 초에 “마하”선교의 “마렘베”(Pastor Malembe Tatasi) 목사님이, “가수고”(Kasugho) 교회를 사진 찍으러 용감히 오토바이로 다녀오다, “마이 마이”(Mai Mai)라는 폭도들에게 약 한 시간 가량 잡혔으나 다행히 풀려나서, 무사히 귀환 했읍니다. “가수고” 교회 는 이미 선교보고를 통해 전해 드린바 있읍니다.
 
마이 마이 폭도들은 극우파 성향의 작은 숫자의 폭도들로 콩고를 “르완다”로부터 수호, 보호 한다는 구호를 가지고, 무기를 소지하고, 부템보 시의 북서 10시 방향 25km 부터 130km, 남서쪽 140km 정도의 산악지대를 점령하여 가끔 애매한 민간인을 괴롭힙니다.
 
또 이 지역은 “은테라함외”(Nterahamwe)라는 르완다 “후투”족 출신 폭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후투”족 이며, 르완다 인이나, 폭도 중에서 가장 강력한 “C.N.D.P.” (Conseil National pour la Defense du Peuple – National Assembly of Peoples’ Defense – 인민 방위 국민 의회)가 르완다 의 “툿시” 족 이기 때문에,  CNDP 는 공동의 적이라 하여, 공존 합니다.
 
 
가장 위험 지역은, 부템보 시를 기준으로 정남 100km 부터, 고마 도시 직전 (약 250km간의 지역), 이 중간지점에서 동서 7-80km(약 200km)의 지역이 국립공원 “비룽가” (Virunga Park)의 일부 인데, 이곳은 뉴스에서도 당당하게 인터뷰 하는 “은쿤다” 장군 (반란,폭군 사령관;Laurent Nkunda Batware Mihigo)의 작전지역 입니다. 이 반군은 콩고군 보다 더 현대식 무기로 무장 되 있고,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콩고 정부에서는 대책을 안 세우고 있는 실정 입니다.  수차의 유엔이 주도한 평화 협상도 결렬되고, 9월에는 유엔군을 공격한 적도 있는데, 유엔군은 평화유지의 의무만 있기 때문에 공격을 못 합니다.
 
“은쿤다” 장군은 원래 르완다(툿시족) 인이며, 콩고군대의 장군이었고, 4년 전 까지  “고마” 시 의 “비레레” (Birere) 재림교회에 출석 했습니다.(증인을 알고 있지만 못 밝힙니다.) 정식 침례를 받은 교인 인지 확인이 안 되었고, 그럴 가치도 없다고 생각 합니다. 본인도 공개적으로, “재림교인” 이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사람을 안 죽인다고 말 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 사실은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에는 안 좋은 얘기지만, 또 이미 알려져서 억측이 구구하기 때문에, 사실은 사실대로 밝히는 것도 타당 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지, 12월 초에 “대 총회” 에서는 이러한 무력행위를 규탄하고, 재림교인으로서의 타당한 행동이 아니라는 정식 성명서가 발표 되었습니다.
 
“은쿤다” 반군의 본부는 “키창가” (Kichanga, 마시시 Masisi  지역의 작은 마을)에 있고, “고마” 시 에서 서쪽으로 5-60km 됩니다.
 
남, 북 키부 지역은 역사적으로 르완다인과 콩고인 들이 섞여서 살던 지역으로, 불어를 하던 “벨지움”이 식민정책을 시행하던 과정에서, 명확하게 구별을 안 했기 때문에, 독립 후에도 두 민족의 갈등이 역사의 원인 입니다.
 
특히 1994년 불행한 “르완다의 대 학살 사건” 이후, 르완다의 “후투” (Hutu) 족과 “툿씨” (Tutsi)족의 갈등이 콩고에 흩어져 콩고인으로 살던 두 종족(후투, 툿씨)에게 미묘한 이익, 이권, 르완다와 콩고의 각기 다른 정치적 입장, 콩고 주변국가의 콩고 자원에 대한 이익, 등의 변수로 이 지역이 “내전”이라는 현실로 되고, 신음하고, 고통 받는 것은 무고한 평민 입니다.
 
 
오늘도 한 선교사는 오토바이를 타고, “로마린다 한인 교회”에서 도와 주신 헌금으로 나머지 6개의 피그미 족 촌(Aloya)의 우물을 마무리 하러, 마이마이 폭도가 있음에도 떠났습니다. 2-3일 전부터 폭도들이 나타났다는 정보를 현지 목사님 한데서 연락을 받았지만, 본인이 구태어 가겠다고 떠났습니다.
 
무사이 돌아 오면 다음 주에는 “밸리 한인 교회” 서 도와주신 헌금으로, “마켈레(Makele)”의 2개 우물, 그 다음 주에는 “쎄리토스 한인 교회”서 도와주신 “테울레(Teule)” 을 끝으로, 모든 피그미 촌이 깨끗한 물을 마시게 됐습니다.
 
또 다름 선교사는 오늘 “와싱톤 스펜서 한인 교회”와 결연을 위한 갈수 있는 마지막 교회로 사진을 찍으러 갔다 무사히 귀환 했습니다. 이  모든 도움이 “BMW”를 통하여 이루어 졌습니다. 금년의 모든 헌금 감사는 수일 내로 따로 보고 드립니다.
 
그래서, 이 현실은 선교사에게 기회 입니다. 북 키부 의 콩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 원 한다고 선교보고로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 들을 축복 하시기 위한 기회 입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오랜 동안 시달리고, 누구도 이 들 편에 서서 대변 해준 일도 없고, 정부, 군인, 경찰 모든 공공기관을 믿을 수 없습니다. 이 들은 착취자 이지, 보호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로 몰립니다. 우리의 일은 복음만 전하면 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뒤에서 도와 주어, 콩고 교회 지도자 들이 콩고인 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게 도와 주면 된다고 생각 합니다. 이들 편에 서 주기만 해도 됩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에 같이 가라는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까?
 
수일 내로 또 선교보고를 사진과 함께 드립니다.
 콩고 선교사, BMW 아프리카 연락 원,  양 승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