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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목요일 - 제자들이 또 들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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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 일에 살아나리라”(마 20:18, 19).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아직 앞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반면 제자들은 하나님 왕국의 본질과 예수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가 드러나자 완전히 눈이 뒤집혔습니다. 코앞에 닥친 십자가와 배척에 대한 생각으로 예수님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 그들은 보좌(마 19:27, 28)와 개인의 영달(마 20:20~24)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던 것입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은 서로 다른 두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보다 그들이 들어야만 하는 것을 더 많이 언급하십니다. 곧 다가올 죽음과 부활에 대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이번으로 세 번째입니다. 그 순간에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예루살렘과 갈보리의 십자가를 향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직후 예수님은 이 문제를 처음 꺼내셨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식했지만 그분이 메시아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 처음으로 자신에게 닥칠 죽음과 부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7장 22, 23절에서 예수님은 다시 그 주제를 언급하십니다. 그리고 지금 마태복음 20장 18, 19절에서 또 그 주제를 꺼냅니다. 매번 주제를 반복할 때마다 좀 더 상세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번에는 유대 지도자들이 자기를 죽이기로 결정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길” 것까지 알려 주십니다. 또 조롱받고 채찍질당하는 등 그분이 고통을 받는 방식에 대해서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도 처음으로 언급하십니다. R. T. 프랑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같은 표현은 (유대 지도자들과 이방인들의)총체적인 배척뿐만 아니라 굴욕적이고 비참한 고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순교가 아니라 추하고 더러운 도살이다. 그럼에도 그가 제삼 일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 몽매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야망과 일상의 투쟁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복음의 교훈 중 하나가 여기서 발견됩니다. 인간의 본성이 뒤틀어지면 자아와 자기 욕망에만 집착하고 하나님과 그분 뜻에는 죽어 버린 사람이 됩니다. 이것은 단지 서기 1세기의 현상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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