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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월요일 - 그리스도 왕국의 핵심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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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저의 생활 방식과 충돌하는 이 구절이 저는 달갑지 않습니다. 내키지 않는 명령입니다.
황금률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 율법은 똑똑하게 말합니다. 율법이 싫은 것은 결국 그 법을 주신 하나님이 싫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인 일에나 신경 쓰시지 왜 우리 일에 일일이 간섭하시는 걸까요?
이 질문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을 건드립니다. 황금률, 율법, 심지어 하나님조차 싫은 이유는 이것들이 우리의 이기적인 삶, 그리스도 밖에 있는 죄의 삶에 제동을 걸기 때문입니다. 죄 된 본성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반면, 황금률, 율법, 하나님은 이타적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기적인 삶에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반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에서는 무엇이든지 마음에 들면 가지려고 합니다. 남의 배우자가 마음에 들면 취하려고 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거짓말도 불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하나님과 그분들의 오지랖 넓은 율법과 규칙이 본성적인 자아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종종 짜증이 몰려오기도 합니다. 예수는 바로 이것을 끝장내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바꾸고 싶어 하십니다. 그는 왕국의 원리를 우리 마음에 새기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마태복음 7장 12절의 황금률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 황금률 그리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라는 선언을 통해 산상 수훈은 마태복음 5장 17절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마태복음 5장 17절과 7장 12절은 둘 다 율법과 선지자를 강조합니다. 두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첫 설교의 핵심 사상을 한데 묶어 줍니다. 따라서 황금률이란, 그리스도께서 풀어 주신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을 집약한 결정체라고 봐야 합니다. 반면 마태복음 5장 21절~7장 11절은 황금률에서 파생한 여러 원리를 확장한 것입니다.
요약과 해설 양편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란 삶의 방식이자 생각의 방식이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목록에 불과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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