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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9일 안식일 - 회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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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겪는 상심은 회개할 마음을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고후 7:10, 공동번역).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옳을 수 있을까요? 죄인이 어떻게 의롭게 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조화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는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일까요? 오순절 때의 군중과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부르짖었을 때 베드로의 첫마디는 “회개하라”(행 2:27~38)였습니다. 얼마 뒤에는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 3:19)라고 했습니다.
회개란 죄에 대해 후회하고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추악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면 죄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죄에서 떠나지 않으면 삶에 진정한 변화가 이르지 않습니다.
회개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악행 때문에 고통 당할 것이 겁나서 자기 죄를 후회하거나 표면적으로만 개선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가 아닙니다. 저들은 죄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고통 받게 될 일이 슬픈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영원히 잃어버린 사실을 알고 에서가 슬퍼한 것이 그런 것입니다. 자기 앞길에 칼을 빼 들고 서 있는 천사를 보고 발람은 겁에 질려서 자기 죄를 인정했습니다. 목숨을 잃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지도, 뜻을 돌이키지도 않았고 악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자기 주님을 팔아 버린 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정죄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범죄자의 심령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고백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임할 결과 때문에 그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나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팔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배반한 일에 대해 가슴이 미어지는 깊은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통 당할 때에 더 이상의 형벌을 면하기 위해 자기 죄를 인정했지만 재앙이 그치자마자 다시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이들 모두는 죄 때문에 거둘 결과 때문에 통탄했지 죄 자체를 뉘우치지는 않았습니다.

<정로의 계단>, 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