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할머니

카자흐스탄에 있는 우리집은 시골집같은 낡은 단독인데,

집 뒤에 집만한 밭이 하나 더 딸려 있다.

우리 이웃은 왼쪽 오른쪽 뒤쪽에 세 집이 있는데,

그 중 우리는 닭모이를 주면서 친해진 왼쪽 카작인 새댁네와

 뒷집 러시아인과 가까이 지내고 있다.

 

뒷집에는 낮에 주로 할머니 혼자 계시는데 가끔 우리집에 전화도 하신다.

‘나쟈!(나의 러시아 이름, 소망이라는 뜻) 잘지내? 건강은 어때?

밭에 잡초가 많은데 뜯어다 우리 담 밑으로 던져놔줘, 닭이랑 돼지 좀 주게..’

‘나쟈! 잘지내? 슬라바(송목사의 러시아 이름, 영광이라는 뜻)는 어디 갔나봐,

사과나무 밑에 사과가 많이 떨어져있던데 그것 좀 주워서 우리 담에 걸어놔 줘.’

‘나쟈! 잘지내? 옥수수 벌써 다 따먹었나봐,

슬라바가 한가할 때 그 옥수수대 좀 다 베어서

우리집 담 너머로 던져놔줘, 돼지가 먹어.’

‘나쟈, 포도나무 잎좀... 참외 껍질 좀... 우리집 담 넘어간 호박 좀... ’

그러면서 마지막에 꼭 하시는 말씀이

‘달걀 안필요해? 필요하면 내가 지금 갖다 줄게 나와.’하신다.

 

노인네가 다리도 불편하신데 사주기를 부탁하시는지라

필요 없어도 ‘10개 주세요.’ 하고 밭으로 나가본다.

집에 있다 해도 어린이 교재 번역도 하고

한글 수업준비도 하고 방문 시 챙겨갈 것들 준비하느라 한가한 게 아닌데도

이래저래 부탁을 하시면 시집살이가 따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할머니가 얄밉지도 못한것이,

 한 이틀만 집을 비워도 용케 아시고 전화하셔서

‘나쟈! 어디 갔었나봐, 집에 없더라고,

나는 나쟈가 아예 중국 고향으로 가버린 줄 알았어.’

할머니는 한국에서 왔다고 해도 자꾸 깜빡하시며

나를 중국인이라고 하신다.

 

허술한 철조망으로 대충 담을 세워놓았고

창문도 투명한 유리로 되어있으니

몸은 편찮으셔도 눈이 좋으셔서 집안까지 다 보이시는 모양이다.

 

이번에 우리 시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한국에 다녀왔는데,

우리가 사는 따라스에 도착하니

집집마다 석탄과 나무를 태우느라 매캐한 냄새와 연기가 자욱했다.

우리는 다시 이 공기에 적응하느라 감기몸살이 나 버렸다.

끙끙 앓고 누워있는데 뒷집 할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속으로 ‘또 뭘 달라고 하시려나, 밭은 이미 다 갈아 엎어서 아무것도 없는데.’

하면서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받아보니

밭에 1분만 나와보라고 하신다.

 

한국에 가기 전까지만해도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셨었는데

이번에는 바퀴가 달린 보조장치를 밀며 걸어 나오신다.

‘오늘이 우리 할아버지 추모일이야. 18주년.’하시면서

직접 구운 빵과 사탕이 들어있는 봉지를 지팡이에 꿰어 담너머로 건네주신다.

‘나는 나쟈랑 슬라바가 아예 한국으로 가버린 줄 알았지.

이렇게 좋은 이웃이 완전히 가버릴까봐 걱정했다구~.’하신다.

할머니는 저렇게 아프다 하시면서도

한국에서 의료선교팀이 왔다고 가자고 할 때마다 매번 거절하신다.

카작인들도 러시아인들도 성전에 가지는 않으면서도

우린 이슬람인이다, 러시아정교 믿는다 하며 교회에 가기를 꺼려한다.

우리 시할머니도 저렇게 다리가 아프셨었는데...

뒷집 할머니를 보니 오늘따라 더 짠하다.

할머니 당신도 시간이 얼마 없으시지만,

사실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 알 수 없다.

예수님께서 무한한 값으로 사신 지금의 시간동안

사랑하는 모든 이웃들에게

더욱더 부지런히 복음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