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안식일(23일)은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안식일 중 하루였습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 이래 그리고, 제가 카작스탄에서 선교사의 생활을 시작한 이래처음으로 7명의 영혼에게 침례를 베푼 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카작에서의 2년은 현지 목회자와 함께 협력목회를 하면서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은 달랐습니다. 협력목회가 아닌 그야말로 담임목회를 시작한 것입니다.

교인의 영적부흥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한글학교와 구역반을 중점으로 사업을 계획하여 추진하였습니다.
또한 지역 청년담당 목회자로서 매주 일요일 청년 모임을 조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구역반에서 3명 청년반에서 3명 그리고 한글학교에서 한명의 영혼이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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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곱영혼을 위한 침례식이 지난 안식일(23일)에 거행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혹여나 불안해 할까봐 첫 침례식이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침례를 위해 차로 약 30분 이동하여 딸라스강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모든 침례식 전 순서를 잘 마무리 하고, 드디어 침례식 시간이 되었습니다.
물의 깊이와 물살을 가늠하기 위해 물속에 들어간 순간 바짝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키르키즈스탄의 산에 있는 눈이 녹아서 흘러오는 물이라 굉장히 차갑고, 물살도 거셋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제 1호 침례자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기도를 하고 물에 잠그려고 몸을 뒤로 젓기는 순간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는데 그의 몸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간신히 그의 몸을 물에 잠그고 들어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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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침례자는 물 속에서 들어올리다가 되려 제가 뒤로 자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일곱명의 침례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다음날 제 몸이 심상치 않음을 알게되었습니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한 것입니다.
침례 예정자들에게 침례전 교육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잠시 의자에서 낮잠을 청한 것이 화근이 되어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제가 침례받던 순간을 떠올리며, 침례주신 목사님의 마음을 가슴 깊이 이해하게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분의 2호 침례자였습니다. 1호가 되고 싶었지만, 친구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목사님보다 신장이 약 10-15센티미터 정도 크고, 몸무게는 어림잡아 약 20키로는 더 나가는 덩치가 큰 학생이었습니다.

저와 몇몇 교인들은 "어떻게 침례를 주실지"를 걱정하였습니다.
목사님도 약간 긴장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약간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물에 잠그는 것 까진 괜찮았는데, 들어올리는 순간 제 몸이 들어올려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은 순간 다시 한번 힘을 주어 저를 들어올렸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목사님은 그때 저를 혼신의 힘을 다해 끌어올리신 것 같습니다.
현재 대학에서 시무하고 계시는 그 목사님을 뵙게 된다면, 꼭 여쭈어 보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그 때 허리 아프지 않으셨어요?"

 

 (선교사 게시판에서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