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월

 

아침 일찍 바티칸 박물관을 향했다. 여덟 시 10분 전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줄이 길었다. 연간 입장객 400만명을 넘어선 것이 벌써 여러해 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분량의 소장품은 세계의 어느 박물관보다도 많은 곳이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으로 천정과 벽이 채워진 시스틴 성당은 발디딜 틈없이 관람객으로 가득 찼다. 전면은 장식한 미켈란젤로의 걸작 최후의 심판에 그려진 예수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죽으면 지옥으로 가거나 연옥으로 가서, 후손들의 신앙과 헌금에 따라 연옥을 벗어나 천국으로 간다는 내용의 그림이다. 예수 옆에는 마리아가 있었다. 천주교인이 아닌 여행 가이드들이 그림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았다. 천주교회는 미술품을 통해서 비 천주교인들의 입으로 그들의 신앙을 전하고 있었다.

 

비오 6세의 이름으로 명명된 방에서 버티어 장군에게 포로가 되는 그림들을 보았다. 1798년, 다니엘서 7장 25절과 계시록 13장 3절의 예언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끝나는 해인 가 1798년, 정확하게 예언을 성취시키는 장면이 나타났다.

 

오후에는 코르시니 궁을 보았다. 코르시니 궁은 프랑스 대사의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1797년 연말에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다. 교황정부군과 이태리의 독립을 외치는 시위대 군중이 서로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교황정부군이 발포를 하게 되었다. 그 총알이 우연하게도 나폴레옹 황제의 친척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프랑스의 두포(Duphot) 장군에게 맞아 숨지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 황제는 격분하여 교황과의 모든 평화조약을 백지화하고 1798년 2월에 교황정부를 없애고 로마의 혁명공화정부를 세우기 위해 버티어 장군을 로마로 보냈다. 버티어 장군은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현장에서 나이 많은 교황 비오 6세를 체포했다. 그 총알이 일반 군중에게만 맞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작은 사건이 예언을 성취시키는 큰 사건으로 연결되었다.

 

늦은 오후에는 1929년, 교황청의 영토를 돌려주고 교황의 주권을 인정해주는 라테란 조약이 체결된 장소인 라테란 궁과,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침례를 받았다는 곳과, 마틴 루터가 무릎으로 올라가다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각성을 경험한 빌라도의 층계를 방문했다.

19,576보를 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