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흔세 번째 이야기 -  왕의 만찬을 거절한 외교관

비엔베니도 티하노 목사는 천주교인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의 사촌 두 명은 천주교 신부였으며, 부모는 아들을 천주교 사제로 키우려 했다. 그가 어렸을 때 어느 날 누군가가 집 앞에 성경을 갖다 놓았다. 어머니는 이 책을 반가워하고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손님들에게 이 성경을 찢어 물건을 싸주는 데 사용했다. 매일 물건을 팔며 성경을 찢어나가는 과정에서 성경을 읽게 되고 마침내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교인이 되었으며, 비엔베니도 티하노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안수 목사가 되었다.


재림교인을 이끄시는 인도의 손길

DSC_0406.jpg

왕의 만찬을 거절한 외교관
                

2008년 7월, 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은 통가 왕국의 국왕(George Tupou V) 즉위식에 초청을 받았다. 대통령의 일정상 왕의 대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아로요 대통령은 뉴질랜드 주재 필리핀 대사인 비엔베니도 티하노 대사에게 대통령을 대신하여 통가 국왕의 대관식에 참석해줄 것을 부탁했다.

 

대관식 행사는 7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 닷새나 계속되었다. 40년을 통치한 선왕(Taufa'ahau Tupou IV)이 작고한 후 왕위를 이어받은 지 2년 만에 거행되는 대관식이어서 대관식 행사는 호화찬란했다. 대관식을 위해서 250만 달러의 비용이 들었으며 100마리의 돼지를 잡았다. 8월 1일 금요일에 거행된 대관식에서 새로운 왕의 머리에는 기름이 부어지고, 금으로 만든 왕관이 씌워졌다. 이 자리에는 일본의 왕세자인 나루히토를 비롯하여 여러 왕국의 왕자들과 왕족들을 포함한 귀빈 1,000명의 귀빈이 참석했다. 대관식이 끝나며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와 VIP와 일반인들을 위한 세 번의 무도회가 있었다. 무도회에서 시종(侍從)들은 부지런히 술을 날랐다. 한 시종이 값비싼 술잔들로 가득 찬 쟁반을 들고와서 티하노 대사에게 어느 것을 들겠는가 물었다. 티하노 대사는 주스를 달라고 했다. 다시 다른 시종이 와서 무슨 술을 들겠는가 물었다. 또 다시 주스를 달라고 했다. 무도회가 끝나자 티하노 대사는 왕으로부터 특별 초청을 받았다. 왕이 친히 초청한 만찬에 초청받은 받은 사람은 티하노 대사를 비롯하여 파푸아누기니의 부통령과 국무장관, 뉴질랜드 국무총리 등 여섯 명이었다.

 

왕의 만찬을 기대하며 점심부터 배를 비워두었다. 저녁인 8시에 왕이 등장하며 만찬은 칵테일파티로 되었다. 사람들이 많은 무도회에서 술을 거절하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겨우 여섯 명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왕이 하사하는 술을 거절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티하노 대사는 물을 주스를 달라고 했다. 다시 시종이 들어와 술을 고르라고 했다. 다시 주스를 달라고 했다. 또 다시 시종이 들어와 다른 술을 고르게 했다. 이번에는 물을 달라고 했다. 다음부터는 시종의 질문이 ‘무슨 술을 들겠는가’에서 ‘주스를 드릴까요 물을 드릴까요’로 바뀌었다. 빈속에 술을 넣기만 하는 칵테일파티가 계속되자 참석자들은 배가 고팠지만 왕에게 음식을 빨리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밤 아홉시, 열시, 열한시를 지나 자정이 되어서야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 술에 취한 그 시간에 국왕은, “여러분을 위해 통가에서 가장 좋은 돼지를 잡았”다고 했다. 또 다시 난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감히 외교관의 입장에서 상대국 국왕이 접대하는 식사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티하노 대사는 용기를 내어 국왕 옆으로 가서 조용히 요청했다.

 

“전하, 통가는 생선이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티하노 대사, 그래도 돼지 요리가 더 좋지요. 오늘 가장 좋은 돼지를 잡았습니다.”

“전하, 저는 통가에서 유명한 생선요리를 한 번 먹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사, 통가 제일의 돼지고기 요리인데 한 번 잡숴보시지요.”

“전하, 통가의 생선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윤허해주시기 바랍니다.”

 

갑자기 왕이 만찬 자리를 떠났다.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당황했다. 그러나 만찬장소를 떠난 국왕은 곧 돌아오지 않았다. 반시간이 지나도 한 시간이 지나도 국왕은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 즉위한 60세의 국왕이 만찬장소를 벗어나 돌아오지 않자 모두 불안해했다. 두 시간이 지나서 새벽 두 시가 되어서 문이 열리며 온몸을 땀으로 적신 국왕이 들어섰다.

 

“티하노 대사, 내가 대사를 위해 직접 생선을 요리했소.”

 

예기치 못한 상황에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티하노 대사는 국왕이 요리한 생선을 먹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러나 바로 옆에 앉아있는 뉴질랜드의 수상이 계속 곁눈질을 했다. 뉴질랜드의 총리 헬렌 클락은 2009년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정한 세계의 가장 영향력있는 여자 100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정치인이다.

 

“총리 각하, 생선을 잡수시고 싶으십니까?”

 

클락 총리가 미소를 지었다. 티하노 대사는 생선 한 마리를 클라크 총리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이번에는 오른쪽에 앉아있는 다른 귀빈 한 분이 티하노 대사의 접시로 시선을 돌리며 곁눈질을 했다. 그에게도 다른 생선 한 마리를 주었다.

 

통가 국왕이 대관식이 끝나고 여러 달이 지난 후 다른 장소에서 또 다시 식사 문제로 난처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때 뉴질랜드의 총리가 나서며, “티하노 대사님은 육식을 하지 않으십니다. 생선요리를 드리시지요”라며 옆에서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