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 11일부터 1 23일까지 캠퍼스미션이 반치아오행복교회로 봉사대를 다녀갔다.

벌써 두 달이 지났고, 다시 새로운 전도회를 앞두고 있지만, 그때의 놀랍고 소중했던 일들이 기록으로 남지 않고 잊혀질까봐 뒤늦게라도 기억을 더듬어 후기를 남겨 본다.

 

사실 캠퍼스미션(이하 캠미”) 봉사대를 받기 위한 논의는 작년(2012) 4월부터 있었다. 골든앤젤스 전도회가 끝난 후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친구들이 생겨났고, 신앙에 관심을 보이는 여러 친구들이 수면 위로 드러남에 따라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전도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 대한 호기심에서 모여든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이미 우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신앙에도 마음을 열고 있는 이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여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정말 뜨겁게 보여줄 수 있는 전도회가 필요했다. 이미 침례를 받은 친구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런 존재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해 주고,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에게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해줄 그런 전도회누가 과연 그 역할을 잘 감당해 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접촉하게 된 사역팀이 바로 캠미였다.

캠미는 대원들 한 명 한 명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뜨거움을 주체하지 못하는 친구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해외 선교 경험은 없지만 국내에서 어느 곳으로 봉사대를 가든지 대원들이 일대일로 영혼들을 만나서 직접 말씀을 전하고 그들의 가슴에 진한 사랑과 감동을 심어주고 돌아오는 전도팀이 바로 캠미였다. 캠미가 와 준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진행하든지 간에 우리가 바라는 목적을 이루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반기 때는 뜻밖에 발생한 여러 사정들 때문에 캠미도 오지 못했을 뿐더러 다른 어떤 팀도 받지 못했다. 골든앤젤스 전도회 이후 솟아올랐던 장밋빛 꿈들은 사라지는 것 처럼 보였고, 전도회를 하기는커녕 매주 예배와 한글반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시간들이 이어졌다. 반치아오 행복 교회는 참 힘든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9월이 되어, 드디어 조장렬 목사님께서 새롭게 부임해 오셨다. 목사님 가족이 반치아오로 오신 후에, 캠미 전도회는 다시금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캠미와 봉사대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 것이 9 14일이었다.

우리는 이례적으로 일찍부터 기도를 시작했다. 전도회는 1월 예정인데 10월부터 그 전도회를 위한 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반치아오 행복교회에서는 새벽기도 때마다 캠미전도회가 기도의 제단에 올랐고, 캠미 친구들도 매 주 한번씩 모여서 기도했다. 그것 외에도 캠미는 봉사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 달 동안 붕어빵을 팔았다. 직접 우리 교회에 올 친구들 말고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붕어빵 장사를 도와주고, 붕어빵을 사 먹고, 우리 교회를 위해 기도해 주었다. 많은 기도로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있을 일들을 더 많이 기대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도전들을 직면하고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언어의 장벽이었다. 우리가 준비하는 전도회는, 대원들은 영혼들을 모으고 강사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던 기존의 전도회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주 강사도 없이 대원들 한 명 한 명이 다 강사가 되어 일대일로 영혼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캠미 전도회의 특징이었다. 그것은 아주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직접 전도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몇 개의 소그룹을 구성한다 해도, 각 소그룹마다 통역을 한 명씩 배치해 주어야 하는데, 누가 통역을 한 단 말인가? 말씀 카드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것을 직접 읽도록 하는 방법이 대안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언어가 안 통하는 상황에서는 딱 그 카드 내용만 전하고 나면 한마디도 더 할 수 가 없다. 자기의 간증도 한 마디 더 엮어 넣을 수 없고, 듣는 사람의 느낌도 한마디 더 들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전도가 될까?

 또 한가지 어려움은 참석 인원에 대한 것이었다. 이번 전도회에는 주된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미리 등록을 받을 수도 없었다. 몇 명이나 참여할 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초신자와 구도자 친구들이 캠미 대원들과 같이 거리에 나가 전도도 하고 계속 함께 하면서 감화를 받게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바람인데, 다들 직장인이어서 낮 시간에 함께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대략적인 인원조차 파악되지 않아 계획을 세우는 데 무리가 따랐다. 무언가를 준비한다고 해서 그것을 그대로 할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어느 때보다 답답한 상황 속에서, 어느 때보다 더 큰 기대를 가지고, 캠미 전도회는 조금씩 조금씩 준비되어 갔다.       

IMG_20121226_13281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