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퍽 섬에 재림교회가 전파된 것은 먼저 핏케언 섬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지난 2009년 1월 Adventist World에는 저를 흥분시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펫케언 섬이 어떻게 재림 기별이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1876년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인 ,J. N. 로보로와 화잇 부인의 남편인 제임스 화잇이 펫케언에 조그마한 공동체가 알고 있음을 알게 되어 상자에 서적을 가득 채우고 샌프란시스코 항구로 떠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세인트 존 스크리브너호의 선장 데이빗 스크리브너를 만나게 되었다. 선장은 그들의 청을 들어주게 되었고 핏케언 섬에 책 상자를 실어 주었다. 주민 중 몇 명이 이 책을 읽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때까지 따르던 영국국교회의 교리를 버리지 않았다.

10년 후인 1886년, 켈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재림교회 평신도인 존 I. 테이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겼다. 의사는 오클랜드의 오염된 공기가 원인이므로 좀 더 공기가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은퇴한 선원이었던 테이는 다시 항해 하기로 결심하고, 마태복음 28장 19절의 명령에 따라 끓는 가슴으로 핏케언 섬으로가 주민들에게 그가 사랑하는 신앙을 전하기로 하였다. 사실 왜 그가 그 섬으로 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1886년 10월 18일,존 테이를 태운 영국 소형 군함인 펠리칸 호가 핏케언 섬 해안에 당도했다. 그는 5주 동안 사람들과 성경 공부와 기도를 했고, 그가 떠나기 전 많은 주민이 재림교인으로 침례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는 평신도이기 때문에 침례를 줄 수 있는 안수 목사를 데리고 오겠다고 약속했다.

태평양에 있는 섬 수 백개에 복음을 전파하는 도전이 1890년 미국 재림교회를 휩쓸었고, 안식일에 한두 푼 기금을 모금하여 핏케언호라는 배를 건조하게 되었다.

이 작은 배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전도의 상징이 되었다.

밑에 보이는 그 우표가 바로 핏케언호이다. 1890년 10월,존 테이와 안수 목사인 에드워드 H. 게이츠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핏케언 섬을 향해 항해에 올라 11월에 섬에 도착했다. 그 이후 몇 달 동안 몇 명이 침례를 받기 시작하면서 결국 핏케언 사람 대부분이 재림교회에 입교했다.

아래의 우표는 재림교회에 두 번째 우표로서 1968년 3월 18일에 발행되었다. 이 때 발행된 우표의 종류가 14종이었는데 20센트용 우표이다. 노퍽 섬에서 역사적인 중요하고 기념할 만한 배들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왜 노퍽 섬에서 이 우표를 발행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는 핏케언의 섬이 작은데 반해 인구가 늘면서 다른 섬으로 이주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 정착하기 위해 떠난 곳이 노퍽 섬이다. 대부분의 핏케언 섬의 주민들이 재림교인이었기 때문에 노퍽 섬으로 이주한 분들 역시 우리 재림교인이다.

 

노퍽 섬 개관

영국인 제임스 쿡선장은 그의 항해일지에서 노퍽을 "Paradise" 라고 표현하였다. 1774년 당시, 이 섬에는 어느 누구도 살지 않은 곳으로서 쿡선장은 그가 발견한 그 많은 섬들 중에서 단 하나의 언어로 이 곳을 표현하였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생성하였고, 섬의 자연과 역사를 꾸며나아갔다. 세상 어느 곳에도 노퍽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 이 곳 사람들, 어느 누구도 집이나 차를 잠그고 다니지 않으며, 이 곳에는 교통체증, 실업률, 수입관세등 현대 문명에서 일어나는 그러한 골치아픈 일들은 생기지 않는다.

 

◈ 공식명칭: 노퍽제도(the Norfolk Islands)

◈ 수도 : 킹스턴(Kingston)

◈ 위치 : 시드니의 북동쪽(오스트레일리아령(領)으로 시드니의 북동쪽 약 1,676km 해상에 있는 섬.)

◈ 면적 : 34㎢

◈ 인구 : 약 2 천

◈ 인종 : 핏케언 민족의 후손과 뉴질랜드 인

◈ 언어 : 영어(공용어), 노퍽어

◈ 종교 : 카톨릭, 기독교(프로테스탄트)

 

기후

아열대성기후로 평균강수량이 1328mm이며, 여름평균기온은 24℃, 겨울의 경우 19-21 ℃이다. 여행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기후이다.

 

Norfolk-109.jpg 지형

노퍽제도는 뉴질랜드에서부터 뉴칼레도니아까지 이어진 노퍽 능선에 자리잡고 있는 섬으로 뉴칼레도니아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퍽과 필립섬은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곳으로서 거의 비슷한 지형을 가졌다. 노퍽 섬의 주변 해안선은 바닷물의 침식작용으로 인하여 거칠고 가파르다. 특히, 해안선에는 많은 깍아지른듯한 절벽이 많이 있다.

면적은 34㎢, 인구는 약 2천(1992)이다. 화산섬으로 평균 해발고도 110m이며, 가파른 지형으로 이루어졌다. 중심 마을은 킹스턴으로, 1774년 J.쿡이 발견한 후 1788∼1803년, 1826∼55년의 2회에 걸쳐 죄인들의 식민지(植民地)로 이용되었다. 56년 이래 바운티호(號)의 반란자와 타히티섬의 부녀자와의 자손인 피트케언인(人)들이 정착하였으며, 1914년 이래 오스트레일리아령에 속하게 되었다. 주요 농산물로는 오렌지·강낭콩·소나무 등의 종자(種子)를 들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관광산업이 중요한 산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