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처럼 시간이 났다. 멀리서 총무부장 아버지의 장례식이 있었던 관계로 오전의 성경연구가 최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못해 봤던 일들을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
어제는 어쩐지 한국노래를 목청껏 불러 보고 싶었다.
컴퓨터를 켜고 교회 음악을 찾아서 크게 틀어 놓고는 집안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이곳으로 올때 테잎으로 된 음악은 모두 한국에 놔두고 왔기 때문에 음악을 들으려면 컴퓨터를 켜서
들어야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곳에 온지 4년 가까이 되도록 한국어로 된 교회노래를 거의 듣지도 않았고 부르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아참! 아침예배때를 제외하고는)
예전엔 차를 타고 먼거리를 여행할 때면 줄곳 교회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지금은 너무 안 불러서 아이들도 한국노래의 가사를 거의 다 잊어 버렸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찬미가  4절까지 줄줄 외워서 부르는 곡이 많았는데 지금은 한 곡도 제대로 부르지 못한다.
대신에 중국어 노래는 외워서 부를 수 있는 곡이  꽤 많아졌다.
그리고 새삼 놀랐던 것은 여기 교인들이 외우면서  부를 수 있는 찬미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차에 가면서 좋아하는 찬미를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결국은 노래의 가사를 몰라서 찬미가를 꺼내야 했다.
그만큼 교회노래를 평소에 많이 부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음도 너무 높아서 부르기가 어렵다.(똑같은 곡인데도 대만 찬미가의 음이 약간 높은 것이 많았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대만에도 이 노래가 있다. 그런데 중국어로 부를때와 한국어로 부를때의 감흥이 완전히 다르다.
한국어로 부를때 더 감정이 풍부해짐을 느낀다.
예전에 한국에서 즐겨 불렀던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가장 힘들었을때 나에게 힘이 되어준 곡
"내 구주 예수여"등 찬미는 항상 내 옆에서 하나님과 나를 더 친밀하게 맺어주는 매개체가 되어 왔었다.
청년때 좋아하던"달리다굼" 과 "우리"그리고"실로암"
유난히 큰소리로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던 큰 언니 그래서 지금도 목소리가 참 듣기 좋다.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진 못해도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음악회가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 가곤 했다.
대만에서는 그런 기회가 거의 없다.
교회 노래도 녹음해서 나온 곡을 한번도 본적이 없고 자료를 얻기 위해 여러번 함회로 전화를 했었는데
우리 교회노래를 테잎으로 낸 것이 없었다. 어린이 노래 자료도 거의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들도 일요일 교회에서 나온 템포가 빠른 곡을 부르거나 청년들의 복음 성가를 부른다.
대만에서 가장 큰 교회(송산) 에서도 어린이 노래가 없어 영어노래로 대신한다.


얼마전에 영아반을 시작했다.올해 침례 받은 황이롱자매의 아들과 두명의 교인 자녀들을 그대로 방치 할 수가 없어서
였다.
그런데 문제는 영아 노래가 없다는 것이다.노래가 풍부한 한국이 부러웠다.
할수없이 한국노래를 가지고 와서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엉터리 번역을 시작했다.
"안식일 학교에 누가 왔나?" 제일 쉬운 곡부터 번역을 했다.
진아가 옆에서 엉터리로 했다며 몇개를 고쳐준다.
"짜이 안시르 쉬에 쉐이 라이너? 친 아이디 청민 라일러
워먼 이코 통셩 환잉 환잉, 친 아이디 청민 화안잉"
기도 하기전에 부를 곡도 필요했다.
"기도하는 이시간" 이곡은 지금 영아반 아이들이 즐거 외워서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곡이다.
"따오까오 디 스찌엔, 빠오 꾸웨이 디스찌엔,니 까오수 샹띠 슈어어 워어  아이니"
헌금할때 필요한 곡"한 선교선이 멀리 떠난다" "이 쉬엔 추안 리따오 유엔 띠퐝 하우하우하우디  리이카이
외일러 유엔 띠퐝더 샤오 펑요 쭈앙만 퐁시엔디 치엔"
그리고 "진아는 선교 선생님""쩐어스 라오스추안찌아오스(3) 쭈어 누리 성꽁"
그 외에 찬미가에 있는 어린이 노래 몇곡을 더해서 영아반을 꾸려가고 있다.
아직도 대만 교인들의 신앙적 감성을 살려줄 음악적 환경이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