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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리오 자매와 딸
작년(2008년)에 침례받은 자매다.
사실 그가 침례받을 당시만 해도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 자매와의 첫만남은 재작년(2007년) 한글학교를 통해서였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늘 혼자말로 중얼중얼 하다가 누군가가 말을 시키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곤 했다.
환청이 들렸고 거기에 혼자서 대답을 하는 것이다.
혼자서 아무 일도 없이 앉아 있거나, 스스로 불안을 느낄때 그런 증상이 심해지는것 같았다.
불쌍한 생각이 들어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뭔가 도울게 없을까 찾고 싶어서였다.

8년전에 남편과 이혼을 하고 그때부터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이제는 환청까지 들릴 정도로 심해졌다고 한다.
물론 증세가 심해지면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어야 했다.
본인의 딸도 나라에서 맡아 키워주고 일주일에 한번만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대만은 어린아이를 휴일이나 방과후에 보호자없이 집에 혼자 놔두면 부모에게 벌금이 나옵니다.
또한 부모가 재정적으로 아이를 양육할 능력이 없을때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을때는 강제로
아이를 정부가 운영하는 보호단체로 데려갑니다. 대부분의 부부가 맞벌이 하는 사회라서 아이들이
방치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사회보장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와 식사를 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여러날을 보이지 않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친정집에 갔다가 환청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면서 심각한 정신적 장애가 나타나자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킨 것이다.

2주가 지나서야 호전되어 퇴원은 했지만,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동안 월세로 살고 있던 집도 밀린 방세때문에 집주인이 이미 모든 짐을 길거리에 다 빼놓은
상태였다.

도움을 바라며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잠시나마 그를 우리집에 머무르게 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친정집에 연락을 취했다.
별로 반기지는 않는듯한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이미 오래된 딸의 병때문에 지쳐있는듯한 목소리였다.
아들도 비슷한 문제가 있어 본인이 돌보고 있다고 한다.
먹고 살아야 하니 직장 생활도 해야 하고.
출가한 딸까지 돌볼 여유가 없단다.
리오리오자매도 이런 사정을 아는지라 친정집에 가는것을 굉장히 꺼려했다.
하지만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은 어머니 집으로 가도록 권유를 했다.

그후 한동안 또다시 그를 보지못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천주교 재단에서 운영하는 보호단체에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도움을 받고자 여러 교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일요일교회 목사님들, 천주교회 수녀님들,
그리고 이들은 리오리오 자매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크고작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일요일교회에서 이미 침례도 받은 상태였다.
일요일에는 본인이 출석하는 정해진 교회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안식일 교회 목사인 나에게까지 찾아온 것이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당시에 그런 그에게 마음을 주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교회의 교인이 될 가망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해서였을까!
이미 일요일교회에서 침례도 받았는데...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내 자신이 부끄럽고, 자매에게 미안하고, 하나님께 죄송하다.

그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2008년) 5월 전도회부터였던것 같다.
한글학교를 통해 알게되었지만, 안식일에는 교회에도 가끔씩 출석했다.
만날때마다 우울증 약을 거르지 말고 먹도록 권유를 했고,
환청이 들릴때 거기에 대꾸하지 말도록 자세히 일러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어야 이 병에서 나을 수 있다며 성경공부를 시작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일요일교회에서 침례는 받았다고 하나 성경말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우리가 자매를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참 하나님을 만날수 있도록 그를 도우는 것이었다.
재정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할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베드로의 고백처럼 우리에게 없는 은과 금을 줄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내게도 있는 것이 있다.
그분!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나의 생명이시다
나의 희망이시다
나의 기쁨이시다
나의 도움이시다
나의 피난처시다
나의 쉼터이시다
나의 능력이시다
...
나의 모든것
나의 구주
나의 예수님!!!

인류의 유일한 희망
주님이야 말로 리오리오 자매의 유일한 희망임을 나는 안다.
그가 주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그의 인생은 변하게 될 것이다.

5월 전도회를 통해
그는 다시 재침례를 받았다.
사실 그가 침례받을 당시만 해도 이렇게까지 변하리라고는 결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몇차례의 성경공부를 했으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났다는 확신을 그의 얼굴빛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침례 결심을 시킬때도 조심스러웠다.
본인 스스로의 결심으로 침례받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나의 친절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침례받아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호소에 바로 OK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머뭇거리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마치 마음은 Yes라고 하고 싶은데 사단이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통해 No라고 하게 하는 듯한 그런 표정을 읽었다.
그를 보면서 언젠가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이 났다.

[우리는 사단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우리는 뒷걸음 칠 수도 없고, 뒤로 돌아서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원의 불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개를 돌려 하나님을 바라볼 수는 있습니다. 아니, 고개조차 돌릴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부를 수는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다만 나를 부르기만 하라. 그러면 너에 대한 주권은 내게로 넘어온다. 그러면 내가 너를 하나님께로 돌려 세우고, 너의 발을 내가 붙들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하나님께로 옮겨 주겠다.” 이것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그대들의 약속과 결심은 썩은 새끼줄과 같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생각과 동기와 애정을 억제할 수 없다. ... 그러나 그대들은 낙심할 필요가 없다. 그대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곧 의지의 참 힘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있는 지배력이요, 결정력이요, 선택력이다. 모든 일은 의지를 옳게 쓰는 여부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셨으니 그대들은 이것을 사용할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마음을 고칠 수 없고 그대 자신으로는 애정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으며, 그리하면 그는 그대들 안에서 그대들이 원하고 행하는 것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하게 하실 것이다.”(정로의 계단 47)]
                                               -만져본 구원, 146페이지-

우리는 이 자매의 마음속의 Yes를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기쁨으로 침례식을 거행했다.
침례식 후에도 매주 수요일 저녁에 집에 초대해서 식사를 하면서 계속적으로 성경말씀을 연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의 중얼중얼 하던 빈도가 적어지더니 요즘은 한번도 발견할 수가 없다.
꽃꽂이 하는 직장을 새로이 얻게 되었고 힘들지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다.
올해 초에는 드디어 자신의 딸을 정부 보호기관에서 찾아오게 되었다.
안식일에는 성실하게 교회에 출석한다.
안식일에 본인이 일이있어 교회를 못 올때는 금요일 저녁 미리 딸을 우리집으로 데려온다.
우리 아이들과 같이 자고, 안식일 예배에 참석한다.
아이가 참 싹싹하고 명랑하고 똑똑하다.
상을 차리고 있으면 시키지 않았는데도 나를 도와서 숫가락을 놓고 뭐든 눈치 빠르게 행동을 해서
귀여움을 더 많이 받는다.

침례식후 1년이 지났다.
오늘 리오리오자매를 본다.
그저 감동이다.
이렇게 밝은 미소가 그의 안에 숨어있었다니...
올해는 집사의 직분도 맡게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또한 가장 절친한 친구로 변해있다.
아무리 처절한 인생도 주님 만나면 저렇게 변하는구나 하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마 12:20)는 주님을
이순간 찬양합니다.

리오리오와 그의 딸 페이지에를 위한 계속적인 기도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