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손길

 

2008년 전도회는 성공적인 전도회라고 보기는 어려웠고 민망했다. 참석한 구도자는 2명이었다. 평균출석 5명도 되지않는 전도회였다. 전도회라고 보기보다는 소그룹도 되지 못하는 성과였다. 강사는 최운성목사였다. 전단지에는 일반인들이 흥미를 끌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복음전도였다. ‘오직 말씀으로’ 정공법을 선택했다. 평소에 하던 요리교실도 뺐다.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수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사람들은 기대를 저버렸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참석한 것처럼 열정적으로 매일매일을 임했다. 어느날은 구도자 한명과 아내가 앉아있는 청중을 보고 말씀을 전했다. 중국어 실력이 어느정도되는지 가늠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전도회 결과는 참담했다. 많은 재정을 들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결과가 같았으면 더 큰 실망을 했을 것이다.

해가 바뀌어 2009년이 되었다. 새로운 전도회 계획을 세웠야했다. 이번에는 작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전처럼 매 전도회에 요리교실을 넣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선포하듯이 “2009년은 대만에서의 마지막 해이니 전도회를 6번 합니다. 마지막 불꽃을 사르겠습니다.” 아내는 놀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6번하는 동안 요리교실을 하며 구도자들이 직접 만들어보고 가져가야할 재료와 재원들은 어디에서 만든단말인가? 한번의 전도회에도 많은 재정이 든다. 부족한 재정으로 전도회를 정말 여섯 번 할 수 있을까? 자체 전도회는 어려운데 어디에서 전도단들을 초정한단말인가? 괜한 객기는 아닌가? 여러 생각들이 나를 흔들어 놓았지만 끝까지 해보기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2월부터 8월말까지 전도회를 6번 치루었다. 그리고 아내는 열심히 한국요리, 김치요리, 건강요리를 전도회 봉사대원으로 오신 여집사님들과 협조하여 만들었다. 매번 구도자들은 많이 모였고 복음에 좋은 반응들을 보였다.

말처럼 여섯 번의 전도회가 성공적으로 마쳐졌다. 6명이 주님안에서 새로태어났다. 힘들었지만 기쁘고 보람된 일이었다. 그리고 어려웠던 재정문제도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따리교회의 2009년 전도회 일정이 여섯 번 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타이베이에 살고 계시는 이름을 밝히기 싫어하시는 장마마(江媽媽)라는 여성도가 많은 금액을 홍인선 집사님편으로 헌금해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여섯 번 전도회 하면서 초과된 금액을 치루고도 남을 만큼 후한 헌금이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축복 기도를 해주었다. 그분은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부비가 더 들면 내가....갚으리라...”(누가복음 10장 35절). 그분은 이름없이 남 돕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다. 마치 도르가처럼 “솜씨 있는 손가락은 그의 혀보다 더욱 활동적”(사도행적 제14장 진리의 탐구자 중)이었다. 이분의 아름다운 선행을 기록에 남겨 후대에도 알리고 싶다. 하늘에서 상이 클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분과 가족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이분은 이전에도 따리교회를 재정적으로 도와주신 적이 있다. 따리교회는 2005년부터 지금까지 매월 한번씩 짱화교도소(彰化監獄)에 가서 재소자들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 재소자들 중에서 1300명 이상이 성경통신학교에 입학했다. 이 활동에도 교통비며, 점심값이며 등등 많은 재정이 든다. 이소식을 전해듣고 값없이 재정을 후원하신 적이 있다. 그때 교회 재정이 어려웠던 때였는데 그분의 도움으로 1년 이상을 재정적 어려움 없이 교도소 선교에 매진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돕는 손길이 있었기에 전도회가 성공적으로 마쳐졌다. 하나님은 주위에 이미 돕는 손길들을 준비해 두셨다. 의지가 있으면 하나님의 사업은 재정적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바라기는 따리교회가 도움과 지원을 받는 것에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교회로 성장하기를 소망하며 기대한다. 

사진설명 : 2009년 6번째 전도회 사진 IMG_114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