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아침이다.
신서영 선교사가 학교로 떠난 후 마저 짐을 꾸려 출국할 준비를
다 마칠 즈음에 사모님과 푸아이 집사가 왔다.

아침으로 과일을 먹으라고 열심히 준비하시던 사모님,
드디어 상위에 과일이 차려졌고 사모님을 사이에 두고 푸아이와 나는 마주 앉았지만
이제는 정말 떠날 시간임을 알기에 될 수 있으면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별에 서툰 사람들처럼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아가며..
내가 한 말을 중국어로 통역하고 푸아이가 한 말을 한국어로 통역하시던 사모님이
급기야 더 이상 통역을 못하고 책상의자에 엎드려 우셨다. 푸아이도 나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애써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아직 목에 남아있던 과일을 눈물과 함께
삼키자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처음 도착해서부터 지금까지 같이 밥하고, 음식을 만들고, 요리강습하고,
같이 기도하고,웃고 울면서 중간 중간 나누었던 진솔한 이야기들과 장난스런 눈짓과
몸짓을 하며 행복해했던 시간들, 아...정이 너무 깊이 든 것 같다.

목사님께서 차를 가지고 오셨기에 곧 떠나야 해서  뜨거운 이별의 포옹을 하고
차에 올랐다.공항에 도착하자 나를 내려주고 목사님은 곧 떠나셨지만 물끄러미
떠나가는 차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선교사의 길이 소명감을 가지고 한다지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우리는 이렇게 일주일 아니면 열흘 동안 열심히 해주고 훌쩍 떠나면 되지만
이곳에 남아서 계속 일해야 하는, 남몰래 눈물 흘리며 살아가야 할 선교사의 길이
가슴에 닿아와 마음이 아팠다.

전도회를 해서 몇 명의 영혼이라도 인도하려고 일 년에 서 너 차례씩 전도회를 열고
구도자 유치를 위해서 한글반을 운영하고, 공항에도 수십차례 다니면서 대원 이동을
책임지고 영혼관리를 위해 애쓰시는 PMM 선교사인 이재형 목사님...쉴 시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중에도 늘 활기찬 모습 잃지 않으시고 청년들과 눈높이를 같이
해주시던 모습들.. 지난 금요일 오후였던가... 교회 구석에서 쓰러지듯이 잠깐 잠이 드신
목사님이 깨시지 않도록 불을 끄고 나온 일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대원들에게 방을 내주고, 시장도 보고 음식준비도 해야 하고, 통역도 해야 하고,  
중국어 때문에 한문으로 아들 공부도 시켜야하고, 학교 다녀 와야 하고, 이곳 문화에
적응해야하고, 교인들을 잘 관리해야하는 사모님, 일곱 살 난 어린 아들이 이곳보다도
한국이 좋다고 혼자서라도 비행기 태워 보내달라고 할 때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라 사모의 일을 잘 못할까봐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이리저리
굴리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던 사모님은 어느새 그 누구보다도 유능하고 겸손한
사모님이 되어계셨다.

언어의 장벽을 넘기 위해 수많은 노력 끝에 지금은 자유자재로 중국말을 하시는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한번도 힘든 기색 하지 않고 끝없이 끝없이 청년들과
교인들을 품으시는 사랑 넘치는 모습에 존경과 함께 회개하는 마음이 생겼다


‘나는 너무 쉽고 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1991년 밤, 천명선교사가 태동하던 역사의 현장인  필리핀 삼육대학원(AIIAS) 강당에
있었던 나는 철야기도회 때 잔디밭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 서원을 아뢰었다

‘주님 저는 이제 아기 엄마가 되어서 지금 당장 현장에 갈 수 없으니
보내는 선교사, 기도하는 선교사가 되게 해 주세요’

그 후로 천명선교사를 위해 계속 기도하며 여러 가지 내가 할 수 있고
천명선교사들과 관련된 것들은 최선을 다한다고 했었는데  돌이켜보니
못한 것이 더 많아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영어연수원을 경영하면서
‘그래, 나는 지금 갈 수 없으니 이곳에 오는 아이들을 위해 작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많은 교사들과 함께 천명선교사 출신들을 교사로 채용하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대열에 서게 되었으나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라서 한국에서 들려오는
PMM 선교사, 히스헨즈, BMM운동, 자급선교 등의 소식을 들으면 내 마음의 안테나가
나도 모르게 주파수를 맞추느라 소리를 냈었는데 이렇게 며칠이라도 이 현장에
투입시켜주시고 PMM 선교사와 골든엔젤스 그리고 북아태지회 목사님 그리고
모든 교인들로부터 큰 배움을 얻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아직 탑승시간이 좀 남아있어 문화체험을 할 것이 있는지 천천히 둘러 보고 있는데
한문을 두 자 쓰면 예쁘게 엽서처럼 만들어주는 곳이 보였다. 먼저 붓을 가지고
물로 연습을 한 후 새로운 한지에 먹으로 두 자를 쓰면 되는 것인데 무슨 한자을 쓸까...
고민하다가 혹 한글로 써도 되냐고 물어보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잘 못 쓰는 글씨이지만 이렇게 두 자를 썼다.


“선교”


그리고 기도했다

'부족한 저에게
이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보여주시고, 베푸신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짜이찌엔~ 타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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