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난토우 안명찬입니다.
안식일 저녁 대만 60주년 기념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부모님 집에 전화를 드렸더니 아무래도 할머니께서 운명하신 것 같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고, 워낙 기운이 다하셔서 이제 이 땅에서의 생명이 다 하셨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께서 청양 화성교회 전도회를 마치는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전도회에 영향을 받지 않으시고 할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손이 귀한 집안에 시집오셔서 아들 딸 아들 딸, 순서대로 8남매를 낳으셨습니다.
그 중에 아버지는 장손이셨고, 저 또한 집안의 장손입니다.
그 어려운 가정에서 자녀들을 잘 키우셨고,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어릴 적 방학 때마다 일주일씩 할머니의 맛있는 음식과 때때로 파자마 속에서 동전을 꺼네시면서 맛있는 거 사먹으라고 100원짜리 동전을 주시곤 하셨지요.
80년대에 물을 먹기 위해 매일 약수물을 머리에 이고 오시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의 빨간 장떡이 생각이 납니다.
손자들을 위해 어린이 대공원에 가기 위해 김밥을 준비해 주셨던 할머니, 예전에는 교회에 잘 안나가셨지만 손자들을 위해 안식일에 교회를 데려다 주시고, 언제나 손자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죄악 세상에 사는 인생이 이제 어느덧 세월이 흘러 연로하셨고, 떠날 시간이 되셨습니다.
장손인 제가 비행기를 따고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는데 시간이 급하고, 눈이 많이 와고, 또 다음 주에는 목회 처음 나와서 하는 전도회 강사를 맡았습니다.
또 그 다음주에는 통역을 맡았습니다. 고민하던 중에 결국 저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못했습니다.
불효하는 이 손자를 용서 하시겠지요.
평범한 여인이었으나 장손 모두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까지 아들의 전도회를 마친 후에 눈을 감으신 것을 보니 저 역시 고국에 가 보지는 못하지만 이곳에서 저의 사명을 다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 주님 오시는 그 날에 할머니를 만나 뵐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