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잠이 들기 전에 군대 동기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너무나 반가운 친구이고 지금도 연락하는 유일한 군대 동기이다.

나는 호적이 충북이었기 때문에 충북에 사는 친구들과 입대하기에 이르렀다.

내 동기는 증평에 사는 친구였는데, 나아 함께 춘천 102 보충대를 시작으로, 27사단 이기자 부대 신병 교육대 같은 내무반에, 그리고 78연대 4중대로 우리는 한 짝을 이루어 갔다. 그 때, 102 보충대와 이기자 신병 교육대를 함께했던 배홍진 선생도 나의 군대 동기이다.

그런데, 이 친구 역시 침례교 신학과를 다니다가 군에 오게 되었다. 내가 군에 갔을 때 우리 중대에 신학생만 여섯 명이 었고, 우리 소대에만 3명이 있었다.

나는 악명 높은 4소대이고, 내 동기는 2소대로 배정 받았다.

우리의 군생활은 쉽지 않았으나 동기가 있어서 서로 위로가 되었다. 어느날 동기인 H형제는 연대 군종병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힘든 4중대에 있게 되었다. 다행이 줄을 잘 서서 일찍 상병에 분대장을 달았지만...

여하튼 동기가 군종병으로 있을 때, 재림 군인 수양회는 아무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었고 그 때의 고마움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가끔씩 연락을 하다가 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나오면서 서서히 잊혀지고 있었다가 인터넷 싸이월드로 친구를 찾기 시작했다. 어느덧 친구는 결혼을 했고, 중국에서 선교사업을 하고 돌아온 뒤였다.

너무나 나와 인생의 방향이 같아서 나도 놀라게 되었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중국에서 언어를 공부한 후에 한국에서 목회를 하던 차였다.

내가 대만에 오게 된 후에 다시 연락을 시작했고, H 목사는 지금 대전에 침례교 선교사 훈련원의 훈련 목사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젊은 목사가 훈련 사역을 하고 있음에 놀라기도 하였지만 그런 친구가 자랑스러웠다.

어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사역에 대해 많은 것을 알 게 되었다.

그의 교단 침례교는 미국의 남침례교단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고, 이미 20여 년 전부터 약 700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학생도 있고, 기술 및 여러 분야의 선교사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했다.

선교사들은 대략 10년 에서 15년 정도 선교사로 봉사한다고 했다. 이 정도는 해야 교회가 자립을 할 수 있고, 한국인 선교사는 현지 지도자를 세우고 귀국할 수 있다고 한다.

선교사는 교회에서 파송을 하고, 작은 교회는 여러 교회가 모여 한 선교사를 파송한다고 했다.

재정이 풍부한 장로교회와는 다르게 비교적 작은 교단이기 때문에 교회 건축보다는 신자 양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선교사 교육은 약 2달 정도 합숙을 하며, 다양한 선교사 교육을 받는데, 예전에는 일반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지금은 선교사들의 경험이 약 70%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이전 보다는 선교사 교육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하였다.

H 목사는 자신의 교회가 없기 때문에 평일은 선교사 훈련의 일을 맡고 주말에는 교회의 목사로 일하고 있었다.

우리의 봉급 제도와 복지 등에 매우 안정적인 모습에 놀라는 눈치였다.

현제 그는 자신이 직접 큰 교회의 도움을 받아 대전 도마동 근처의 배재 대학교에서 중국인 학생으로 개척 교회를 시작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대전에는 7000여 명의 중국인 학생들이 유학을 와 있다고 하였다.

배재 대학에 1100 여 명, 혜천 대학에 700여 명, 충남 대학에 700 여 명 등 대전에 위치한 대학에 그렇게 많은 유학생이 있는지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중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단독으로 개척하는 교회는 최초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4명을 양육 시켰고, 그 다음에는 9명으로 교회를 시작하여 지금은 30 여 명에 이르는 교회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의 비젼과 그의 선교사 정신이 내게 신선한 감동과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오직 선교사만이 생각할 수 있는 전도 방법 아니겠는가?

내가 자라던 도마동 교회를 그 역시 지나가면서 보았다고 한다. 도마동 교회의 양 옆에는 배재대학과 혜천대학이 있고, 그 중에 중국 유학생이 1800여 명이 있었다니....

우리의 전도 대상이 옆에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또 다른 도전과 소식을 전해 준 친구가 있어 좋았다.

비록 교단은 다르지만 나는 군대에 입대 할  때부터 세천사의 기별이 전해지며, 남은 무리의 한 일원이 되기를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예루살렘에 수 많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왔을 때, 각자 다른 언어로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을 듣고 귀국했던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이제는 한국에 와서 한류를 경험하며 공부하고 있을 때에 그들의 언어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귀국해서 중국과 다른 나라에 그들이 직접 선교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놀라운 일들이 사도 시대 당시와 우리의 시대가 흡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