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왕하 2:15-25

불신하는 학생들(15-18)

[15] 여리고에 있는 예언자의 무리가 엘리사를 지켜 보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엘리야의 영이 지금은 엘리사 위에 있도다.” 그들은 엘리사를 맞으러 나와서 그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16] 그들이 엘리사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힘센 사람 오십 명이 있습니다. 그들을 보내서 당신의 선생님을 찾게 하십시오. 어쩌면 여호와의 영이 엘리야를 데려가시다가 산이나 골짜기에 떨어뜨렸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엘리사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보내지 마시오.” [17] 그러나 예언자의 무리가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엘리사는 “그 사람들을 보내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언자의 무리 오십 명을 보내어 삼 일 동안,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18] 그들이 여리고에 머무르고 있는 엘리사에게 돌아왔을 때, 엘리사는 “그것 보시오. 내가 가지 말라고 하지 않았소?” 하고 말했습니다.

물을 고치신 하나님(19-25)

[19] 그 성에 사는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십시오. 선생님도 보시듯이 이 성은 살기 좋은 곳이지만 물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열매가 익지 못하고 곧 떨어집니다.” [20]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새 대접에 소금을 담아 오시오.” 사람들이 소금을 담아 왔습니다. [21] 엘리사가 샘이 솟는 곳으로 가서 소금을 뿌리며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내가 이 물을 고치니 지금부터는 이 물 때문에 죽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물 때문에 열매 맺지 못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22] 엘리사가 말한 것과 같이 그 물은 오늘날까지도 깨끗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23] 엘리사가 그 곳을 떠나 벧엘로 갔습니다. 벧엘로 가는 길에 어린아이들이 성에서 나와 엘리사를 놀려 대며 말했습니다. “가거라, 이 대머리야. 가거라, 이 대머리야.” [24] 엘리사가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했습니다. 그러자 암곰 두 마리가 숲에서 나와 어린아이 마흔두 명을 찢어 죽였습니다. [25] 엘리사가 그 곳을 떠나 갈멜 산으로 갔다가, 다시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선지자 생도들은 왜 엘리야를 찾았습니까?
2. 못 먹는 물을 어떻게해서 먹게 했습니까?

■ 본문해설

불신하는 학생들(15-18)

선지자의 무리들은 엘리사가 요단강을 건너 돌아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영이 엘리사에게 임하였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에게 임한 것도 확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엘리야가 병거타고 하늘에 올라간 것을 믿지 못하여, 엘리사에게 오십명을 보내어 엘리야를 찾겠다고 제안합니다. 엘리사가 만류하지만 그들은 3일동안 엘리야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와 엘리사에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상황에 따라서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식의 한계 안에서만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의 메시지를 순종하여야 합니다.  

물을 고치신 하나님(19-25)

“여리고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곳으로 황폐되어 있었다. 계곡의 이 부분에는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샘물이 솟아났으나 이 샘물들까지도 독한 저주의 결과를 냈다. 그러나 아합의 배도 당시의 이세벨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아스다롯 예배가 부활되었고 그로 인해 옛날에 이 예배의 본거지였던 여리고는 그것을 건축한 사람이 무서운 대가를 치르기는 하였으나 재건되었다. 벧엘 사람 히엘이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말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왕상 16:34)다.
여리고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과목나무 숲이 있었고 선지자 학교 중의 하나가 있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승천한 후 그 곳에 갔다. 그 곳에 체류하는 동안 그 성읍 사람들이 선지자에게 나아와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고 말하였다. 전에는 깨끗하고 생기를 주던 샘물, 그 성읍과 인근 지방에 물을 공급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던 샘물이 이제 사용하기에 부적당하게 되었다. 엘리사는 여리고 사람들의 간청에 응하여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고 말하였다. 이것을 받은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왕하 2:19~21)고 하였다.
여리고의 물을 고친 것은 사람의 지혜로 된 것이 아니요 놀라운 하나님의 관여로 이루어졌다. 이 성읍을 재건한 자는 하늘의 은총을 받을 가치가 없었으나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마 5:45)시는 하나님께서는 이 경우에 이러한 자비의 증거를 통해서 그가 이스라엘의 영적 병을 기꺼이 고쳐 주고자 하심을 나타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셨다.
그 회복은 영구적이었으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각 시대를 통하여 그 물은 계속 흘러 내려 계곡의 그 부분은 아름다운 오아시스를 이루었다.
물을 고친 이야기에서 많은 영적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새 그릇과 소금과 샘물은 심오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엘리사는 쓴 샘물에 소금을 넣음으로 여러 세기 후에 구주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마 5:13)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던 동일한 영적 교훈을 가르쳤다. 더러워진 샘물에 섞인 소금은 그 물을 깨끗하게 하고 전에는 쇠퇴와 죽음만 있던 곳에 생명과 축복을 가져왔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를 소금으로 비유하신 것은 그들을 당신의 은혜로운 백성으로 삼으신 당신의 목적은 저희가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대리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임을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하심이었다. 온 세상 앞에 한 백성을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그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려는 것만이 아니요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주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을 때에 단순히 그로 하나님의 특별한 친구가 되게 하심만이 아니요 주께서 열국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특별한 특권의 매개체가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선지, 231-232).

■ 적용
1. 나는 하나님의 선지자의 기별에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는가?
2. 나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 부패해가는 세상에 생명과 축복을 전해주고 있는가?

■ 기도
주님 재림하실 때 주 안에서 사는 성도들을 하늘로 데려가심을 온전히 믿게 하소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하게 하소서. 세상의 소금이 되어 부패하는 세상을 구원하게 하소서.




자료제공 : 김신섭 목사
kimss3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