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M 2기 대만 의란교회 정해섭 목사

 

이미 여러 PMM 선교지역에서 아름답고 헌신적인 봉사를 하고 있다. 나도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기쁘다. 참으로 대단한 주의 종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늘 그런 선교사들을 부러워한다.

내가 가지는 선교사로서의 내면은 늘 조금 어둡고 무겁다. 지금까지의 결과도 그렇고 지금의 현실들이 그렇게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내가 주님께 감사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은 아직도 연약한 자를 붙들고 계시고 주님께서 분명히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준비하여 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내면에 조금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선교사로서의 힘든 경험들을 나누는 일이 겁나지 않는다. 오히려 혹 나와 같은 기질, 혹은 상태에 있는 선교사들이 있다면 서로 간에 좋은 격려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이 글을 쓴다.

이곳 대만은 우리나라 경상도만한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북으로 큰 산맥이 있는 관계로 동서로 어디를 가기가 쉽지 않다. 특별히 동부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고 대부분 도시가 서쪽에 있어 동부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고 교통이 특히 불편하다. 내가 배정받은 지역은 이 동부지역 중 하나인 의란(宜蘭)이라는 곳이다. 이런 형편은 그나마 연약한 기독교세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특히 재림교회는 이곳 현(우리나라로 말하면 '도') 전체에 아주 작은 예배소 두 곳뿐이다. 그나마 두 곳 모두 대만에서 소수 민족인 원주민 교회로 산지에 있으므로 사실상 교회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가 바로 이곳에 재림기별을 증거하려고 파송되었다.

이런 상황에 이삿짐을 한 편에 쌓아두고 마무리 공사로 인부들이 북적대는 와중에서도 나는 마음이 계속 부담스러웠다. '빨리 시작해야 할 텐데, 어떻게 말을 걸까? 중국말로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그뿐이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떡을 해서 옆집에 인사하러 다녀라, 떡이 없으면 김치라도 갔다 드리고 인사를 해라"라며 어떻게든 하루빨리 전도의 문을 열기 위해 나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달달 볶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김치를 들고 옆집을 방문해서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할지도 몰라 사전을 찾고 벽보고 연습을 한참하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든 하루속히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나 자신뿐 아니라 아내도 힘들게 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첫 안식일을 맞았다. 5명이 모였다. 아이들 3명과 사모, 그리고 목회자, 우리 가족뿐이었다. 우리 가족만 예배를 드린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시작에 불과했다. 몇 달이 지나도 여전히 가족만이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드리다가 찬양을 부르다가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아마 처량한 내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안식일은 쉼과 안식을 주는 날이 아니라 곤욕스럽고 부담스러운 날이었다. 안식일이 지나면 깊은 안도와 평안의 한숨을 쉬었다.

일이 안 되고 결과가 없을수록 더욱 정신적 압력을 받는 듯하다. 내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집집 방문을 안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막내 아이를 보고 있어서 혼자 가든지 셋이 함께 가야 했는데 모두 쉽지 않았다. 방문을 가면 이런 말을 하겠다고 몇 가지를 중국말로 준비해 놓고는 실행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안식일에 아무도 없이 예배를 가족끼리 드릴 때면 한없이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렇다고 선교하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국 사람을 찾아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인간관계를 갖기 시작했고 한글반을 통해 사람도 알아갔다. 이렇게 저렇게 아는 사람이 생기면 수도 없이 집으로 초청하여 함께 음식을 먹고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여전히 결과는 없었다. 하루는 어떤 전도회 비디오를 보던 딸이 갑자기 말했다. "아빠 저기 교회야? 우리 교회도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다!" 괜히 코가 찡했다.

힘들게 느낄수록 더욱 의기소침해지고 그럴수록 일하는 것도 소극적으로 되게 마련인가 보다. 여러 번 아내는 “목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제안도 해 보지만 여기서 내가 그만두면 좋아할 것은 누구겠는가? 어쨌든 가장 심각하게 나의 목회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도 되었다.

일 년이 지났다.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면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는 모든 면에서 나아졌다. 할 일도 훨씬 많고 아는 사람도 늘었으며 안식일에도 몇 사람이 모인다. 물론 집집방문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불안하고 확실한 것이 없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크게 역사 할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그렇게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었고 어떤 특별한 스트레스로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은 사람이 모여도 말씀을 잘 준비할 시간이 없는데 그 시간에 잘 준비를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개척 선교는 외롭고도 긴 경주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실수이지만 너무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하거나 조바심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생각해 본다. 나 자신의 영혼과 신체만 해롭게 할 뿐이었다. 고국에 있을 때처럼 친구나 동료 목사들이 가까이 있어 목회의 넋두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회 재충전을 받을 기회도 쉽지 않다. 가족이 함께 있어 참으로 다행이지만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이국땅에서 6여 년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별히 전혀 조직이 갖추어지지 않은 나의 선교현장(이곳 교회)을 고려할 때 스스로 시간을 어떻게 잘 관리하는가 하는 것이 참으로 승패의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나는 이런 기회를 주신 교회 어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자신을 살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런 연습들을 잘 마치고 선교 현지에서는 물론이고 고국에서도 성공적인 목회를 통해 지지해 주신 어른들께 보답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2.JPG

정해섭 목사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