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아침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열 세 번째 이야기 - 판사 앤더슨의 법정에서

로이 아담스-애드벤티스트 리뷰지 부 편집자

"일동 기립! 몬테레이 카운티의 시 법정이 열립니다. 판사 말라 O. 앤더슨이 주재합니다."
정리의 낭랑한 음성과 함께 판사 앤더슨 법정의 오전 업무가 시작되었다.

음주운전 중에 범죄한 혐의로 고소된 25세의 스테파니 조안느 맥코이는 법정에 서서 그녀의 동료들의 면면을 살피고 있었고 앤더슨 판사는 의자에 앉았다.   
배심원 선발이 진행될 때 나는 중서 캘리포니아에 있는 몬테레이 카운티의 10명의 재판관 중 하나인 이 여자의 다양한 면을 연구하려 시도했다. 그리고 나머지 아침시간동안 생각했던 것들을 메모하였다. "점잖다. 거칠다. 다정하다. 침착하다. 형식적이지 않다. 확고하다. 동정적이다. 유머가 있다. 상식을 지킨다. 능력이 있다."
한 순간에 범죄자를 감옥에 보내고 다음 순간 고소인에게 편안함을 주는 이 여자는 어떤 여자인가?
말라 오스본느 앤더슨 판사는 1959년, 워싱턴 D. C. 하들레이 메모리얼 병원에서 웬델 오스본느와 그의 아내 코라의 딸로 태어났다. 그리스도인 교육에 깊게 사로잡힌 그 부부는 네 딸들을 최고로 키우기 위해 파나마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엘름가에 있는 J. N. 앤드루스 초등학교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한 집을 발견하고 그들은 얼마나 좋아했는지. 그러나 인종문제로 그 학교에 갈 수 없었다. 2마일 떨어진 슬래고 재림학교에 갔지만 유사한 문제가 있었다. 수주일간의 대기상태 후에 두명의 자녀들은 입학할 수 있었지만 말라는 다음 해까지 기다려야 했다. 다음해 말라는 슬리고 학교에 3학년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시작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스포츠에도 참여했고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라고 부모들은 말했다.
나는 그 중요한 시기에 대한 말라 자신의 생각을 알기 원했다.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하고, 무엇인가 되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는 몰랐습니다. 워싱턴 D. C. 외곽에서 자라는 일은 항상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항상 어느 정도 정치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런 증거가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그녀는 항상 어떤 직분을 맡으려 하였다.
 덤블링부와 여자 야구부의 주장이었고 학생회에도 적극적이었다. 1977년 말라는 로마린다 대학의 라 시에라 캠퍼스로 가서 대학을 다녔고 1981년 매스 커뮤니케이션 학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남 캘리포니아대학에 등록해서 2년후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그러나 그녀의 공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녀는 즉시 여생의 주요 초점이 될 일인 법률 공부에 착수했다. 데이비스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을 선택하였고 1986년 법률학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하였다. 그리고 그 해에 힘든 캘리포니아 법률 시험을 한번에 통과했다.
일년 후 주의 수도인 새크라멘토에 있는 법률회사들에서 일년을 일한 후 앤더슨은 몬터레이 카운티 지역의 검사실에서 그 지역담당 부검사가 되었다. 몬트레이에서 그녀는 살리나스에 있는 컴퓨터 정보학 교수인 프레드릭 J. 앤더슨을 만났다. 1987년 결혼했고 현재 그 부부는 자신들의 지역교회에서 든든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떻게 말라는 앤더슨 판사가 되었는가? 그것은 인간의 역할과 하나님의 섭리가 결합된 이야기이다. 그것은 조나단 프리스라는 캘리포니아 상급법원 판사와 함께 시작한다. 어느 날 그가 앤더슨을 불러서 말했다. "당신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판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공석이 되는 자리를 채울 생각이 있으십니까?"
망설여졌지만 결국 그 일에 뛰어들었다. 그 자리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길고도 호된 검증과정을 통과해야 했다. 끝없는 질문들, 평가, 인터뷰. 앤더슨은 1995년 1월 13일 재판관으로 지명되었다.
왜 프리스는 그녀에게 재판관에 입후보하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는가? 거기에 먼 안목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섭리가 드러난다.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가까이서 변호사로 봉사하고 있던 프리스는 재림교인 친구와 로마린다 재림교회에 참석했었다. 그는 그 지역에서 잘 알려진 재림교인 변호사 더글라스 웰리버를 알게 된다. 프리스는 재림교인이 되지 않았지만 법정에서의 그녀의 행동에 친숙하고 매료당하는 무언가를 인식하고 있었다.
앤더슨이 그를 초대해서 길고 호된 신청과정을 그에게 하나하나 나열할 때 그의 대답은 그녀를 놀라게 했다. "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그들이 이야기함에 따라 프리스와 재림교회의 만남이 드러났다. 또 프리스는 자신이 종종 방문했던 그 교회에 앤더슨이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앤더슨이 이미 6월로 예정된 판사선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육개월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는 강력하게 선거운동을 전개했고 주요 지방신문과 명확한 태도를 가진 기관들, 개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지사인 윌슨도 포함되어 있었다. 살리나스 캘리포니안 지의 1995년 5월 27일자 사설은 앤더슨이 공정한 판사가가 될 것이며 그 지역사회에서 청년들을 위한 탁월한 역할모델을 할 것이라는 신뢰를 표현했다.
54세의 백인 남자인 동명의 피터 앤더슨과 경쟁하면서 말라는 결코 인종이나 성을 문제 삼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경험, 헌신, 능력에 초점을 맞추어 63.7%대 36.3%로 승리하였다.
내가 그날 재판석에 앉아있는 앤더슨을 보았을 때 그녀는 한 점의 흩뜨려짐도 없었다. 재판정에서의 그녀의 이런 태도는 피고인이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 피고인 맥코이는 그녀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 29년동안 법률시행을 해온 베테랑 정리인 페레즈도 재판석의 그녀를 칭찬하였다. "아주 공평하고 아주 다정합니다."
나는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앤더슨과 몇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 우리 대화 중 몇을 발췌 요약했다.
질문: 상당히 정도까지 당신은 재림교회 교육의 산물입니다. 당신은 재림교회 학교에서 받은 교육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대답: 아주 높게 여깁니다. 우리는 교육을 읽고 과제를 따라하고 점수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잘못을 범합니다. 그러나 교육은 그대가 처한 환경과 교사가 베푸는 관심을 포함합니다. 내가 우리 학교에서 받은 축복은 공부해야 하는 전체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저에게는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기독교 교육은 직업에 중요한 윤리적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자신의 인생 개념과 윤리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들은 당신의 성취에 어떤 공헌을 했습니까?
부모님들은 교육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들이 미국으로 이민온 이유는 자녀들에 교육에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나름대로의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부유합니까? 어떻게 자녀 모두를 교회학교에 다니게 할 수 있었습니까?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때로 교대없이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자영 사진관을 운영하셨습니다. 번 돈은 자녀들의 교육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많은 희생과 많은 기도, 고된 일의 덕을 보았습니다. 언니도 일을 했고 저도 문서전도일을 했습니다.
세속적 세상에서 일할 준비를 하는 재림교회 청년들에게 줄 충고는?
첫째는 그대가 믿는 바와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모르면 그 때 세속세계는 그대를 삼킬 것입니다. 자신의 윤리와 헌신을 위한 잣대가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계속된 시험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일이 그렇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영적 분위기는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우리가 직면하는 도전들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종교에 대해 좋게만 느끼고, 듣기 좋은 설교만을 들으려하는  세속적 인본주의의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최대 도전은 우리 자신을 특별한 백성으로 여기지 않고 다른 교파에 맞추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파로 불리기를 두려워하고 다르게 되기를 너무도 두려워해서 다른 교회를 흉내내며 다른 모든 종교가 '좋아'라고 말하는 곳에 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교리를 유지하고 그것들을 자랑스러워하며 우리가 믿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능력을 지니는 일은 거대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다른 종교단체와 사람들을 만나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종파는 아닙니다"라고 말할 능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도전은 교회의 청년들에 대한 것입니다. 청년들은 '왜 교회조직의 일원이 되는 일이 중요합니까? 왜 교회에 규칙적으로 출석하는 일이 중요합니까? 왜 교회가 내게 필요합니까'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의 도전은 이 질문들을 설명하고 왜 그리스도인 가치가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재림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만족하십니까?
나는 여자들이 관객의 위치에서 벗어나 참여자가 되려는 면에 만족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에 하나님께서 남자만을 임명하셨다는 개념에는 불만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렌 화잇을 사용하셨다면 재림교회 역사에서 그녀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유일한 여자란 말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판사인 당신을 재림교회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대체로 사람들은 자랑스러워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재림교인이면서도 그런 직분을 유지할 수 있는지 호기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그 둘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저는 자신과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 열망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매우 따뜻한 환대를 받습니다. 호기심 어리지만 아주 따뜻하지요.
마지막으로 10년후의 자신의 모습은 어떨지 물어보았다.
"하나님께 그것을 맡깁니다. 꿈꾸지 못했던 곳에 오늘 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최선인 듯합니다. 내가 어떤 꿈을 꾸던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꾸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한 나는 내가 상상조차 못할 그곳에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