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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안식일 - 가엾고 어리석고 열쇠 없는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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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니라”(고전 15:17~19).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 15:20~24).
부활 없는 그리스도교는 어리석음의 극치이며 바울이 말했듯이 그리스도인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비참한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부활을 믿지 않는 신자는 과일의 껍질만 먹고 알맹이는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능력 없는 허망한 기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신자들이 정확히 이런 일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이들에 대해 맹공격을 퍼붓는 이유는 부활의 진리를 드높이기 위해, 그 진리를 거절하는 어리석음을 폭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무의미한 ‘기독교’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롭게도 계몽주의 시대의 신학자와 목사들이 이 사상을 되풀이했고 그 신학 사조는 20세기 개신교 주류 교단의 기본 신조로 자리 잡았습니다.
똑똑한 현대인들은 부활처럼 말도 안 되는 교리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살아날 수 없고 제자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덮기 위해서 부활 사상을 고안했다는 것입니다. 리처드 니버는 근대 그리스도교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습니다. “진노하지 않는 하나님이 죄 없는 인간을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심판 없는 왕국으로 데려왔다.” “십자가 없는”이라는 말 다음에 “부활이 없는”이라는 말을 추가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윤리와 선행에 중점을 두는 종교입니다.
움츠러들다가 마침내 사멸하는 교회만 생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 메시지의 핵심을 내던져 버렸습니다. <종말적 계시와 재림신앙의 거세>에서 제가 언급했듯이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어떤 운동이든지 그것을 떠받쳐 주는 핵심적인 진리를 버리면 그와 같은 운명을 맞이합니다. 기독교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한 결정적이고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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