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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안식일 - 멋진 다리를 짓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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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 4:7~9).

사도 요한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부유한 유대 지도자 니고데모 이야기가 그 첫 번째였다면 두 번째는 왕따 사마리아인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지만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예수께서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요 2:25)신다는 사실입니다. 두 이야기 모두 그 사실이 드러납니다.
요한복음 4장의 배경은 사마리아 지역입니다. 예수 당시 이 지역은 남쪽의 유대와 북쪽 갈릴리 사이에 끼어 있는 곳이었습니다. 종교적?민족적 순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두 정치 집단 사이에 순수성과는 거리가 먼 사마리아가 존재한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모두 유대인과 이교도가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이 훨씬 더 호의적이었습니다. 근동 지역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400년이 넘도록 반목이 심했습니다.
그런 시대에 예수는 사마리아에서 쉬겠다고 발걸음을 멈췄고 제자들은 음식을 준비하러 갔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한 사마리아 여인이 대낮에 물을 길으러 야곱의 우물에 나타났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상상하기 힘든 일을 합니다. 그녀에게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그 행동 하나에서 예수에 대해 대단히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첫째, 예수의 인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예수는 배고프고 목말랐습니다. 예수의 신성을 가장 강조하는 요한복음에 이 것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둘째, 그 여인이 무시하거나 피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분에게 있었습니다. 그분이 따뜻하고 동정 많은 존재임을 사마리아 여인은 느꼈습니다.
셋째, 예수는 당시 그곳에 편만한 증오와 편견을 뛰어넘어 연결자가 되셨습니다. 단순히 인종의 장벽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회에 형성된 관습의 장벽을 허물고자 하셨습니다. 유대 교사들은 공공장소에서 평이 나쁜 사람뿐 아니라 여자에게도 말을 걸 수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대답에서도 이 점이 명백히 드러납니다.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그런 부탁은 처음 들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론적으로만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몸소 실천하시는 분임을 주님께서 증거 하고 계십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과연 주님처럼 다리를 놓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유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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