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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0일 목요일 - 개혁의 주체와 객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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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마 8:7).

작금 재림교회의 화두는 단연 ‘부흥과 개혁(Revival and Reformation)’인 것 같습니다. 2010년 제59차 대총회, 한국연합회 제33회기, 제34회기 슬로건, 2012년 연합회장님의 신년사 역시 부흥과 개혁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도 이 시대의 ‘가장 시급한 필요’는 ‘신앙 부흥’(1SM, 121)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부흥(Revival)이란 ‘다시 일어난다.’는 말인데 이 말은 지금 주저앉아 있거나 넘어져 있음을 전제로 한 말입니다. 개혁(改革)은 ‘고친다.’는 말인데 이 말 역시 현재 어떤 부분이 잘못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요?
개혁이 회의를 통하여 되는 일이라면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마음과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 개혁의 본질일진데 그 일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예컨대 교만한 나를 강제로 겸손하게 만들어 버리면 쉬울 것 같지만 죄 된 본성이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속은 교만하면서도 겉으로는 겸손한 체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강제하시기 전에 나 자신을 낮춰 버리면 그런 고통스러운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어집니다.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강제로 개혁시킬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하는 것은 죄 된 우리의 본성이 용납하지도 않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내가 나를 개혁해야 가장 부작용이 적고 순리적입니다. 나를 고칠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개혁이라는 말의 ‘고칠 改(개)’자는 ‘자기 己(기)’와 ‘아비 父(부)’의 합성어입니다. 이 말은 늙은 아비(父)의 세대만으로는 개혁이 어렵다는 뜻입니다. 개혁의 바람은 응당 젊은 세대(己)로부터 불어오기 마련이지만 젊은 세대가 홀로 주도하는 개혁은 온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개혁의 주체는 ‘우리’여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개혁의 주체와 객체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개혁의 주체도 ‘나’이지만 개혁의 객체, 즉 개혁의 척결 대상도 바로 ‘나’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개혁의 시작입니다.
내가 바뀌지 않는 개혁은 죽은 개혁입니다. 언제나 문제는 ‘나’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개혁시키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개혁시켜야 한다(5증언,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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