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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2일 안식일 - 한국의 오순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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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기독교에는 세 차례 놀라운 신앙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03년 원산 부흥 운동,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 그리고 1909년 백만인 구령 운동이 그것입니다.
그중 1907년 1월 6일부터 열렸던 평양의 산정현교회의 부흥회는 두 분의 선교사가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초반의 집회 분위기는 냉랭하기 그지없었는데 마지막 날, 설교 바로 직전, 그 교회 수석 장로였던 길선주 장로가 뛰어나와 회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러분, 저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약 1년 전, 내 친구 중 한 사람이 임종 시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 말하기를 ‘길 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날 것 같으니 내 재산을 잘 정리해 주세요. 내 아내는 셈이 약하기 때문이요.’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다가 욕심이 나서 그 일부를 사취했는데 그 죄의식 때문에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해 온 죄인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미망인에게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런 고백이 있은 후, 20명이나 되는 사람이 앞을 다투어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했습니다. 그 시간부터는 사회자도 설교자도 없었습니다. 울며 회개하는 자들뿐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집회를 인도했던 노블(W.A. Noble) 선교사는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 자신이 한 번도 목격하지 못했던 가장 놀라운 성령의 부어 주심의 현시가 한국 교회에 있었는데 아마도 사도 시대 이후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현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 초창기 신앙 부흥의 역사는 미구에 임할 늦은비와 비교하면 사소한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이른비”는 영광스러웠다. 그러나 늦은비는 더욱 풍성할 것이다.”(3보감, 211).
“혹시 우리는 교회 전체가 부흥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그러한 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사업에 투신하여야 한다”(가려 뽑은 기별 1권, 122). 부흥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새벽에 일어나 주님 앞에 엎드려 흘리는 나의 눈물이 바로 늦은비의 시작입니다. 부흥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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