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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화요일 - 낭비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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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막 14:4).

마태복음 26장은 예수님의 최후를 장식하는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전개 과정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먼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계획하는가 하면(1~5절), 마리아의 아름다운 헌신의 이야기가 나오며(6~13절), 슬프고 비극적인 유다의 배반의 이야기가 나오고(14~16절), 최후의 만찬이 나옵니다(17~30절). 비록 전체 흐름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시지만 마리아와 유다가 서로 다르게 집중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배경은 베다니 마을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조촐한 연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휴식을 취하는 그런 연회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 한 여인이 나타나서 매우 귀한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여인이 깨뜨린 나드 향유는 값비싼 히말라야 수입품으로 그 향기는 피로와 슬픔까지도 덜어 주는 그런 신비로운 효력이 있다고 합니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진행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다가 나서서 버럭 화를 내며 “이 향유를 팔면 3백 데나리온을 받을 수 있는데, 이렇게 낭비하느냐?”고 여인의 행동을 무모하고 소비적이며 어리석다고 책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흥미로운 단어에 관심을 가져 봅시다. 그것은 유다가 여인을 향하여 사용한 “너는 왜 소중한 것을 이렇게 허비하고 낭비하느냐?”라고 화를 낸 바로 한 단어인 ‘허비, 낭비(아폴레이아)’라는 단어입니다.

유다는 여인을 향하여 인생을 낭비한다고 책망했는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유다를 향하여 인생을 낭비하고 허비한다고 안타깝게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아폴레이아)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예수님은 유다를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여 결과적으로 멸망당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인생을 낭비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앙의 잘못된 자세 때문입니다. “만일 유다가 기꺼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었다면 사도들 중에 수석의 자리를 차지했을 것”입니다(시대의 소망, 295).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척했으며, 가식적인 희생의 삶을 드렸고, 예수님을 성공의 방편으로 삼았기에 “차라리 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뻔”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마 26:24). 우리는 지금 인생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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