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감동시킨 사진이다.
1911년에 촬영한 사진으로 선교본부를 서울로 이전한 후에 찍은 사진이다.
매일신보사 사장이던 배설의 기와집 뒤 서울 성벽 아래서 찍은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모두 한국 최초이다.
두번째 줄 왼쪽에 있는 분과 그 뒤의 여자 아이와 그 뒤의 여자분이 1905년에 한국에 입국한 스미스 목사의 가족이다.
스미스 목사는 입국 후에 곧 딸을 질병으로 잃게 되어 대총회에 의료선교사를 요청한다.
이때에 의대를 갓 졸업한 럿셀이 한국에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입국하게 된다. 앞줄 오른쪽에 있는 분이다.
럿셀은 한국의 안수 목사가 1호가 된다.
럿셀 왼쪽에 있는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여성교육자 스캇부인이고
그 왼쪽, 앞줄 가운데가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여성 선교사 샤펜버그이며 한국에서 일하다가 건강을 잃어 주님께 목숨을 드렸다.
그 왼쪽이 왕대아 여사이며 그 왼쪽 곧 앞줄 왼쪽에 있는 분이 왕대아 여사의 남편 왕아시 목사이다.
왕아시 목사 역시 한국에서 일하다가 건강을 잃어 생명을 잃었다.
왕대아 여사는 한국에서 일하며 사랑하는 남편과 언니를 잃었으나 굴하지 않고 37년을 한국에서 섬겼다.
맨 뒤에 사진기를 들고 있는 분이 이희만(Howard Lee) 목사로 이제명(James Lee) 목사의 아버지이다.
이희만 목사와 샤펜버그 사이에 있는 분이 전시열 목사로 한국의 초대 (연)합회장이다.
그리고 럿셀 목사(의사) 뒤에 있는 분이 오벽 목사로 17년을 한국에서 섬긴 한국교회사상 최장수 연합회장이다.
그도 딸 하나를 한국에 묻었으며 자신도 건강을 잃고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가 1년간 총무부장으로 섬기다 귀국하여
곧 병으로 사망하게 되었다.
이 사진에 나오는 분들이 두 분이 한국에서 섬기다가 생명을 잃었으며 나머지 분들도 모두 자녀를 한국에 묻은 분들이다.
이들의 헌신과 수고, 땀과 눈물 위에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아래의 두 동영상은 교회역사가인 이영린 목사가 위의 사진을 설명하는 동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