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와 언어

  언어는 생활이며 문화이다. 기본적인 언어능력 없이 정상적인 생활도 문화적인 교류와 이해도 불가능하다. 이런 까닭에 언어를 제 나이에 맞게 적당하게 구사하지 못하면 언어장애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사는데 어려움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타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에게 현지 언어습득과 활용은 단순한 외국어 능력향상 이상의 선교지 생존과 선교 사명의 완수와도 직결된다. 그래서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 윌리암 케리는 최초의 선교논문이라 불리는 “그리스도인이 이교도들의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해야할 의무에 대한 탐구”에서 언어를 배우는 것의 필요성에 대하여 논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원주민들의 언어를 배워야함을 역설하였다.
   현지인들과의 소속감과 긴밀한 유대를 위해서도 현지 언어능력은 중요한 요소이다. 유창한 어학실력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언어로 마음의 소통을 시작하면 선교사도 현지인도 편안함을 느끼지 시작한다. 선교사에게는 문화충격을 최소화하여 현지의 빠른 적응과 선교지 생활과 문화에 익숙하게 하여 선교지 생존을 장기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또한 통역 및 현지 조력자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서기가 가능해지며 현지물가를 고려하여 규모있는 생활로 재정적인 부담을 최소로 줄일 수 있다. 아울러 현지 문화와 관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선교지 사정에 정통하여 각종 선교사업의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돕는다. 이런 점에서 언어를 배우고 선교지 문화에 효과적으로 순응하는 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개척선교운동(PMM)은 한국교회의 해외선교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선교사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지어를 어느 정도까지 유창하게 할 수 있어야하나? 일률적으로 어느 정도까지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선교전문가들은 문법적으로 맞게 현지어로 설교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같은 목표를 이루기위해서는 언어에 따라 짧게는 일년에서 길게는 최대 1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처럼 현지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은 체계적인 어학연수과정을 이수한다고 해도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러다보니 자칫 잘못하면 언어습득 자체가 중점이 되어 복음전도라는 선교 본래 사명이 퇴색되기 쉽다. 성경번역 선교사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선교사역은 언어전문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도자를 요구한다. 중요한 것은 언어로 얼마나 마음이 통하고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하여 구원을 이루느냐 하는 것이다. 선교사가 아무리 현지 언어를 잘한다해도 원어민과 동일하게 할 수는 없다. 언어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복음전도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이런 까닭에 선교지에서는 선교사가 어느 수준까지 현지어를 할 수 있느냐 만큼이나 어떤 마음으로 실제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의사소통을 넘어 마음이 통하는 언어, 진리를 담은 열정의 언어, 구원을 이루는 진실한 언어가 필요하다. 성경에서 사도바울의 언어도 구원을 이루었으나 사도 베드로의 언어도 구원을 이루었다. 구원은 언어의 화려한 구사력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언어는 문화일 뿐 아니라 기독교 본래의 말씀의 종교를 현실로 이루는 강력한 수단이자 무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언어를 배워야하나? 언어습득은 본질적으로 학문적인 활동이 아니라 사회적인 활동이다. 선교사 언어훈련 전문가인 토마스& 엘리자벳 브루스터는 언어학습 기술을 계발하기위해 선교 초기에 필요한 네 가지 조건들을 권한다. 기꺼이 그 지역 가족과 함께 살며 지역 대중교통만 이용하라. 관계 속에서 언어를 배우고 개인 소지품을 20kg으로 제한하라는 것이다. 방법론적인 면에서 생활을 통해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현지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우는 언어는 훨씬 효율적이며 자연스러운 활용으로 이어진다. 어린아이처럼 듣고 말하고 반복하여 학습하라 그러면 생소하던 이국어가 뜻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친근한 언어로 변하는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해서는 문법적인 학습도 뒤따라야한다. 문법적인 이해는 언어생활에 완성도를 더하고 보다 정확한 의미와 감정전달을 가능하게 한다.
  아울러 언어의 학습과 활용은 전문적인 소양과 체계적인 학습만큼이나 개인적인 노력과 시간적인 투자가 필요하므로 선교사는 사명감을 가지고 선교지 언어를 배워야한다. 아무리 훌륭한 기별도 선포되지 못하면 능력이 없고 전해지지 않는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될 수 없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은 그림의 떡이고 현지어에 무기력한 선교사는 선교지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신세가 되기 쉽다. 현지인들과 원주민 문화 사이에서 오해와 몰이해로 고립에 처하게 되어 물과 기름처럼 선교지에 융화하지 못하고 복음 선포에 장애를 가진 이방인으로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이여 두려워말고 담대히 말하라. 부끄러워말고 부딪치라. 잘못하면 배우면 되고 틀리면 고치면 된다. 포기하지 않으면 발전이 있고 중단하지 않으면 이루게 된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사42:6)

  “음성과 혀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바르게 사용되면 하나님을 위한 능력이 된다. 말은 매우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 헌신, 찬양, 선율이나 증오와 복수를 표현할 수 있다. 말은 마음의 생각들을 드러낸다. 그것들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이거나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악취가 될 수 있다.” 화잇 원고 40, 18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