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만나 : 요한일서 4:14-21


사랑하면 담대해짐(14-18)


[14] 우리는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15] 만약 누구든지 “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요”라고 얘기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거하시고, 그는 하나님 안에 살게 됩니다. [16]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그 사랑을 알 수 있고, 그 사랑을 굳게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이며,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완전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그 날에 아무 두려움 없이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두려움도 있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같아지기 때문입니다. [18] 사랑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19-21)


[19]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20]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면서 그의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이는 눈에 보이는 자기의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2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들도 사랑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 묵상을 위한 질문

1. 무엇을 통해 두려움이 없어집니까? 그것은 결국 어떻게 된다는 뜻입니까?(해설 참조)

2. 사도 요한이 다시 한 번 형제 사랑을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말씀 해설 


사랑하면 담대해짐(14-18)


사도 요한은 거듭해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하나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온전한 사랑을 이루신 이유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고 담대해집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범죄하는 자, 곧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 자는 심판 날에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심판날에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주님과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온전한 사랑만이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의 두려움을 내어 쫓아 버릴 수 있습니다. 18절에서 말하는 두려움이란 경외심에 따른 두려움이 아니라 노예가 상전을 두려워 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두려움입니까, 경외심입니까? 우리 안에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주를 닮아가고, 두려움 없이 주를 섬겨야겠습니다.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19-21)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는 당시의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동일하게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같이 한다는 말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아픈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갇힌 자들을 위하여 더욱 더 담대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런 성도들은 우리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마음에 묻어두고 있는 용서하지 못하는 형제들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계속 용서치 않는다면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 것입니다. 

 

■ 적용

1. 사랑엔 두려움이 없다고 했는데,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가?

2.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서 형제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 기도

“하나님, 주님을 사랑함으로 두려움 없이 주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의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게 하셔서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