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가을로 가듯 북한 문제가 풀릴 수는 없을까? 

북한 문제,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시조 2002년 9월호 시론


김일성이 죽은 후 북한의 경제는 걷잡을 수 없이 내리닫기 시작했다. 같은 한반도이면서도 남한은 해마다 풍년이 드는데 북한은 한재(旱災) 아니면 수재로 고생했다. 땔감이 부족한 북한에서는 나무로 땔감을 해결하다보니 산은 더욱 황폐해진 데다가 남한보다 산악지대가 많은 북한은 넉넉한 저수 시설을 갖추지 못해 남한과 같은 양의 강수량을 갖는다고 해도 급경사에서 빗물을 수용할 수 없어 수해가 극심했다. 또한 가뭄이 들면 저수시설의 부족으로 물을 대지 못해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갈수록 식량난이 가중되었다. 탈북자들에 의하면 지난 몇 년 동안 굶주림으로 죽어간 북한 주민의 숫자는 300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허기진 배는 땅을 저버릴 수밖에
국가로부터의 식량 배급이 원활하지 않자 주민들은 살 길을 찾아 정든 땅을 버리고 중국과 러시아를 방황해야 했다. 현재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의 수를 적게는 1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보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체제와 굶주림으로 인해 북한을 아주 떠난 사람들도 있지만 어느 정도 저축이 생기면 북한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중국을 찾는 도강자(渡江者)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서 체포되어 다시 북한으로 끌려간 사람들 가운데 65% 정도는 다시 중국으로 탈출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 가운데 통제 속에서 살던 북한 주민들은 외부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탈북의 경험을 통해 외부 세계를 체험한 북한 주민들의 숫자를 줄잡아 50만 명으로 계산할 때 이들이 북한에서 접촉한 주민의 숫자를 개인당 열명씩만 잡아도 500만 명 이상이 외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에 사는 조선족들의 숫자는 한 때 200만 명을 상회했었다. 그러나 검은 고양이든지 흰 고양이든지 쥐만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앞세운 시장경제의 도입과 중국의 개방은 조선족들의 지역 인구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중국의 동해안이 개발되며 한국의 기업들이 대거 진출했다. 동북 3성(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지역의 젊은 조선족 청년들은 중국어 통역 등의 직장을 찾아 남쪽으로 이동하며 이 지역의 조선족 인구는 줄어들어들기 시작했다. 3년 전 동북의 조선족 숫자는 175만 명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작년 말의 인구 조사로는 204만 명으로 불어났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인구가 유입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결국 급물결을 타고 남으로
도강자들과 국외로 이탈한 북한 주민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북한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단절된 북한이 외부에 소개되고, 바깥세상이 북한에 소개되는 데에는 북한 이탈 주민들의 공이 적지 않다. 시장 경제의 원리가 소개되고, 물질주의가 소개되는가 하면 기독교인들과 접촉하여 도움을 받은 주민들이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변화의 속도가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진행되는 것을 본 정부는 서둘러 지난 7월부터 경제 개혁을 단행하기에 이르러 북한의 생활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남한과 서방 세계의 반응을 관측하기 위해 지난 7월의 서해 도발이 이루어졌으며, 마침내 이 달에는 350명의 선수단을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에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고 하셨다. 복음을 세상에 신속하게 전파되기 위한 방법으로 다니엘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 하리라” (단 12:4)고 하였다. 이념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막힌 담을 허물어 신속하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1989년에 동구권에서부터 공산주의의 문을 여신 하나님께서는 지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의 문을 신속하게 열고 계신다.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북쪽의 주민을 얼마나 감싸 안을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글을 쓸 당시 권정행 목사/한국연합회 국외선교‧신탁‧청지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