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사이드 선교사 아웃사이더 선교사

  한번은 미주 천명 선교사를 다녀온 사촌 동생이 “왜 그렇게 형은 교회에서 하는 선교사는 피해 다녔어?” 그리고보니 1000명 선교사도 미주 1000명 선교사도 아닌 학생 자원선교사를 했고 PMM도 아니고 러시아 파송선교사로 있으니 정말 교회에서 하는 선교프로그램을 마치 피하기라도 한것처럼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굳이 관련성을 따진다면 AIIAS에서 공부할 때에 방학기간 중에 민도르 피나말라얀에 1000명 선교사 기록도 없는 단기 봉사대 1기로 달포를 다녀온 것이 전부입니다.

  말그대로 아웃사이더에서만 선교사를 한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더 많은 것을 보았고 느꼈습니다. 고생하면서도 화려한 스폿트 라이트를 받으며 선교사를 하는 사람들과 선교사를 마친 후 여전히 단단한 결속과 교회와 연관을 가지고 유기적인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는 선교사들이 부러운 적도 있습니다. 러시아를 학생자원 선교사로 다녀온 사람들은 기억조차 하는 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다녀온 많은 젊은이들이 믿음의 상처와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교단을 떠난 이들도 간혹 있습니다. 혹 그렇지 않고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분들도 한동안의 고생했던 개인의 추억정도로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역사 속에서만 기록된 사할린 한인교회 개척! 1년에 23명 침례라는 분명히 결과도 있었고 이후 본격적인 러시아 북방선교가 시작되었지만 고생했던 이들은 무명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1년을 휴학하고 학생 자원선교사를 다녀온 후 한동안 복잡한 선교지 사정과 사건들로 마치 죄인인양 마지막 학기를 숨죽이고 조용히 다니다 졸업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포천 재림묘지에서 벌초하는 아르바이트로 비행기표를 사서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사로 러시아를 다녀온 것이 내게는 평생의 부르심을 발견한 사건이 되었지만 교회에서는 기록조차 희미한 선교사역이 되었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교회 조직이 관여하고 있는냐에 따라 선교지와 선교사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다릅니다. 선교사에도 등급이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분명히 아웃사이더 선교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교사 개인의 준비된 헌신과 역량은 아웃사이더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선교 돌파구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접은 아웃사이더 선교사라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는 선교사역이라면 마음은 인사이드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기울여주고 도와주는  선교 프로그램에도 선교사가 필요하지만 누군가 해야할 하나님의 부름심이 있다면 아웃사이더 선교지라도 선교사는 필요한 것입니다. 적어도 선교사의 사역은 아웃사이더가 아닌 인사이드 사역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언젠가는 북방의 동포들을 사랑하는 아웃사이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인사이드 선교사역을 펼치는 그날을 꿈꾸어 봅니다. 한많은 고려인과 불쌍한 북한 동포, 그리고 가엾은 조선족을 단순히 전도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기위해 고민하며, 기도하며, 자신을 나누는 그리스도의 신인류의 출현을 기다립니다.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고대합니다. 그리고 준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