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M 1기 일본 사가교회 박은애 선교사 (임근식 목사사모)

 

타네우라 요시코상,

암 발견 후 한 달이 지난 2004년 6월, 병상에서 그녀와의 첫 대면이 시작되었다. 야윈 얼굴에 활짝 펼친 웃음의 근육이 그렇게 보드라울 수가 없었다. 일곱 송이 장미꽃을 받은 후, 감사로 가득 피운 마음이 무척 시원스레 보였다.

그렇게 9개월이 흘렀다. 해가 바뀌면서 새로움은커녕 몸과 마음이 조금씩 꺼져 가고 있었다. 결국 운구차를 타고서야 퇴원할 수 있는 호스피스 독방으로 옮겨졌다. 정확하게 2005년 2월 17일이었다. 그것이 하나의 신호였을까? 남편 임 목사의 방문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었다. 꽃을 들었었던 남편의 두 손이 어느새 성경으로 바뀌었다. 아침, 저녁이면 어김없이 병원으로 사라지던 그이의 발걸음에 힘이 실려 있었다.

하나님, 교회, 신앙의 간격이 80평생 걸었던 거리보다 멀게 느껴졌던 타네우라 요시코상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을 신뢰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침내, 오랜 침묵이 깨지더니 주변에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요시코상은 남편과 가족의 동의를 얻어 병원에서 침례를 받았다. 3월 24일 목요일 오후 5시 30분, 그날 얼마나 만족해하시던지 그 모습이 그곳에 있던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

어머니 같았던 요시코상이 3월 9(안) 오후 12시 20분 주안에서 잠드셨다. 주님을 만나 거듭난 지 세 번째 맞이한 화사한 안식일 오후에 말이다. 설교 예배 직후 긴급 전화를 받고 병원에 달려간 남편의 시간이 12시 18분. 차가워진 손을 붙들고 기도가 끝나자 아주 차분하게 ‘사는 죽음’을 맞이하신 요시코상.

“오전 내내 목사님을 기다렸고,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면서 안정된 마음으로 눈을 감으셨네요.” 담당 의사의 말이 정말 아름답게 마음에 남았다. ‘마지막이 좋으면 모든 게 좋다.’라는 말이 뇌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전도회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장례식을 준비했다. 순서지, 음악, 영상, 고인 생전의 기록들…. 지역 교회 도움을 받아 사가 교회장으로 진행된 장례식에 하늘의 위로와 감동이 확연하게 보였다. 전야 예배(10일 오후 7시)에 이어 고별 예배(발인)가 11일 오후 1시에 있었다. 모든 순서에 능력이 임하도록 기도하면서 처음으로 맞이한 장례식이었다. 긴장이 변해 위로가 되길 정말 소망했다.

요시코상의 남동생 두 분이 장례식이 마치자마자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표했다. 그리고 오사카 부근 SDA교회 주소를 물었다. 장례식 조문객으로 참석한 수백 명의 영혼에 부활의 기별인 사는 죽음이 자리 잡길 기도했다.

장례식 후 첫 안식일에 요시코상의 남편과 따님이 교회를 찾았다. 이들도 사람 살리는 일꾼이 되길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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