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가시라 슈조(江頭秀三)

일본 사가 교회(PMM 1기 임근식 목사)

 

     3년 전인 2004 5 1일 내 일기에는 “가게 깊숙한 곳에 있던 목재 테이블, 장식이 달린 액자 등을 기부했다.”라고 쓰여 있다. 그날이 바로 SDA 사가 교회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날이다. 한국인 아내가 경영하는 사가역 구내 가게에서 사가에 온 지 얼마 안 된 임근식 목사님 부부를 만났던 것이다. 아마 아내가 한국 사람이라 필요한 물건을 기부하고 도와주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열심히 SDA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아내와 나는 1996 1, 통일교회 합동결혼식에 참가해 결혼했다. 아내는 열렬한 통일교 신자는 아니었고 나는 1982년 대학생 시절부터 16년 동안 통일교회에 푹 빠져 살아왔다. 통일교회 선교사로 미국에서 2년간 봉사한 경험이 있을 정도로 열렬한 신자였다. 그렇지만, 1985년경에 통일교회가 ‘영감상법’으로 매스컴에 두들겨 맞을 때부터 가족이나 친척, 친구들에게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나는 통일교회 신자입니다.”라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그런 상황 속에 SDA 사가 교회를 알게 되어 예배에 참석하면서 ‘이쪽이 나에게 알맞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통일교회는 반사회적이고 교주를 믿으므로 올바른 종교단체가 아니다.’라고 명확히 단정할 만큼의 식견이 없었지만, 성경을 중시하는 SDA 교회가 마음이 편했고 그로부터 1년 후인 2005 7 30일에 침례를 받게 되었다.

     침례를 받은 후, 교회의 성도들, 한국 삼육대학 해외 봉사대 팀원들과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산허리에 있는 ‘청년의 집’에서 1 2일 야영 캠프를 했다. 산책을 하거나 키타큐슈 시에서 특별 강사로 오신 야스이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아내는 기분이 엉망인 채로 나를 맞았다. 6살인 딸이 잠들어 조용해지자 아내는 “가족에 대한 서비스가 나쁘다.”라며 분노했고 침례식 때 받은 꽃다발까지 산산이 찢어 버렸다. 가족들은 이해해 주지 않았고, 직장에서는 안식일준수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내가 믿는 신앙과 진리는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요즘, 매주 교회에서 시행하는 성경 연구와 집집 방문에 가장 많은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있다. 배우면 배울수록 놀라운 진리의 말씀에 전율이 일고 마음이 뜨거워진다. 다니엘서, 요한계시록에서 배운 진리의 기별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일본사적 관점으로 말하면 1623년 즈음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기독교를 금지하고 전국시대에 뿌리내리고 있던 기독교의 싹을 잘라 버렸다. 메이지 시대가 되어 포교의 자유가 허락되었지만, 그 후 14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도 기독교는 소수파로 남아 있다. 여기저기 교회가 눈에 띄는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어느 학자가 논문에 불교보다 기독교가 ‘배타적 일신교’라고 지적했다지만, 그것은 기독교의 미덕과 성경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의 협소한 견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SDA 교회의 발전을 위해 미력이나마 보태어 일본에서 SDA 교회가 더욱 성장하도록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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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가시라 슈조(첫째 줄 가운데 꽃다발 들고 있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