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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화요일 - 예수님에게 찾아온 영혼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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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막 15:34).

어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은 아무리 어려운 일을 겪어도 언제나 아버지가 함께 계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지금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내면의 어둠이 표면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어둠에 압도되어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분리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못 박히는 고통, 군중의 희롱, 제사장들의 야유를 그분은 묵묵히 참았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자 가슴 찢어지는 절규를 쏟아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분의 영혼이 한밤중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어떤 일을 겪고 있었는지 우리는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줄곧 아버지의 현존을 느끼며 지낸 예수님의 입술에서 그토록 가슴 찢어지는 울부짖음이 터졌다는 사실만으로도 뜻하는 바가 큽니다. 그 울부짖음 자체가 십자가 신비의 한 부분입니다.
그 울부짖음에 시편 22편 첫 절이 그대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시편 22편은 예수님의 마지막 고난과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편의 내용은 외롭게 버림받은 사람의 불평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같은 말이라도 예수님의 절규에는 시편 기자가 전혀 알지 못하는 깊은 의미가 녹아 있습니다.
왜 십자가에서 그런 절규가 터져나온 것일까요? 분명 죽음의 공포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죽음처럼 반가운 친구가 없으니까요.
여기에는 더 깊은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위한 그리스도의 사명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순결하고 온전하신, 성육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죄를 지고 계셨습니다. 이사야 53장의 기록처럼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였으며”,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사 53:12, 6).
죄로 말미암는 뼈아픈 결과 중 하나는 그로 인해 죄인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런 분리를 느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신(고후 5:21)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J. D. 존스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뜻을 행하는 아들에게서 얼굴을 돌렸거나 그에게 분노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어마어마한 죄가 하나님의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현존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으셨지만 십자가에서 죄를 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분은 버림받았다고 느낀 것입니다.
느낌이 사실이 아닐 때가 많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복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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