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lasting-gospels.gif
letter-text.gif
line.gif
guide_img.gif

7월 28일 안식일 - 부활 신앙의 진수

guide_img.gif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베다니라는 동네에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오빠인 나사로가 살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나사로의 가정에서 휴식을 얻으셨다. 구주께서는 집이 없으셨기 때문에 친구들과 제자들의 후한 대접에 의존하셨으며…이 평화스러운 가족에게로 피하기를 즐기셨다”(소망, 524). 그러나 이 행복한 가정에 슬픔이 찾아왔다. 나사로가 중병에 걸린 것이다. 자초지종의 전갈을 예수께 보냈으나 “이 병이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4절)이라는 회신만 보내왔다. 두 자매는 오빠가 곧 회복될 줄로 알고 열심히 간병하며 이틀을 지냈으나 결국 나사로가 죽었다. 나사로의 죽음은 주님께도 큰 아픔이었다. 그는 나사로의 유가족들의 애환에 눈물로 친히 동참하셨다. 그의 눈물은 결코 죽은 자나 유가족만을 위해 흘리신 것이 아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애통하는 자들 가운데 많은 자가 자신을 죽이는 일에 가담할 것이었기 때문이다(소망, 533). 주님께서는 가족들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내가 그를 깨우러 가노라”며 무덤으로 향하셨다.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죽은 자의 무덤은 마치 생명의 시여자(施輿者)의 오심도 잊은 채 죄인의 종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큰 돌로 막혀 있었다.

 

그를 따라온 많은 사람 가운데는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그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막 5:39)고 한 말씀을 이적의 부정행위로 곡해하는 자들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나사로가 죽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달 사람은 이제 없다. 그의 죽음을 확인시키시려는 듯이 그분께서는 “돌을 옮겨 놓으라”(요 11:39)고 말씀하셨다. 돌이 옮겨지자 나사로의 시체가 놓인 무덤은 열리고 슬픔의 기색을 띤 애도자들조차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추측하며 숨을 죽였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는 신성의 엄숙한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내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신 후,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부르셨다. 어둠의 동굴은 신성의 음성이 발해지자 즉시 반응을 보였다. 고요한 무덤 속에 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수의로 동여매어 눕혀 있던 시신이 꼿꼿이 서 있었으며 그 속에 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숨이 끊어질 듯한 정적 속에서 주님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라고 말씀하셨다. 동여져 있던 수의를 풀자 부활의 기적이 나타났다. 의문과 음모로 가득 찼던 자들조차 이 경이로움에 놀란 표정들이었다. 죽었던 나사로가 혈색 좋은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난 것이다. 부활은 온 인류의 꿈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우리 모두 부활 신앙의 진수를 이 안식일에 믿음으로 경험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