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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4일 화요일 - '산적 두목'을 위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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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침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1, 2).

어제 우리는 지도자층의 규율을 존중하지 않는 혁명가이자, 종교적 예의범절을 모르는 전도자인 ‘투박한’ 모습의 침례 요한을 만나 보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교회 신자들뿐 아니라 고위 지도자들에게도 회개하라고 호통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는 그들이 꼭 필요한 게 아니라고 그는 외쳤습니다. 제대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돌들로도 얼마든지 착한 유대인들(그리고 재림교인들)을 만들어 내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우리 모두가 매일 행해야만 하는 핵심적인 일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죄 사함을 받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막 1:4). 회개는 우리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아도 쉽게 말할 수 있는 종교적 단어 중 하나입니다. 회개한다는 것과 자기 죄에 대해 안타까워한다는 말을 대부분이 혼동합니다. <정로의 계단>에서는 이점을 이렇게 밝힙니다. “대중은 자신들의 잘못이 고난으로 이어질 것이 두려워 자신이 죄를 범했음을 슬퍼할 뿐 아니라 겉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성경적 의미의 회개가 아니다. 그들은 죄보다는 그것으로 인한 고난에 대해 한탄한다.”
할포드 루콕은 “요한의 전도에서 회개란 전면적인 변화”를 뜻한다고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회개라는 단어는 완전하게 달라지는 것, 곧 새로운 방향으로 돌아서겠다는 의지를 요구합니다. 단지 자신의 죄에 대해 유감스러워하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도덕적이고 영적인 개혁입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회개하는 것은 확실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회개는 모든 영적 변화와 발전의 기초가 됩니다. 그것은 모든 긍지, 자부심, 성공으로부터 오는 위선 그리고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고집이라는 벽을 완전히 허물 것을 요구합니다.
침례 요한의 메시지에서 촉구된 회개는 자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자백이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백의 첫 단계는 바로 우리 자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속의 은혜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을 남자가 아침에 면도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 남자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고는 화들짝 소리칩니다. “이거 완전히 산적 두목이네!” 이처럼 죄에 대해 시인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에게 그리고 자신이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자백하는 일이 이어집니다.
침례 요한의 메시지는 ‘산적 두목’같은 우리에게 자기 합리화를 멈추고 무릎을 꿇으라는 것입니다. 추악한 죄이든 고상한 죄(자신이 선량하고 신실하다는 자부심)이든 유형이 다르다고 해서 문제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요한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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