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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일 안식일 - 예수를 따르는 길은 평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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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 43~45).

하나님과 같은 품성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위 구절을 심사숙고하여 다시 읽어 보십시오. 도대체 우리의 의로움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로움보다 얼마나 더 나아야 하는 걸까요?(마 5:20 참조) 마태복음 5장 21절 이후부터 예수는 ‘더 나은’ 의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극에 달합니다. 미워하는 마음, 불순한 욕망을 품어도 안 되고 쉽게 이혼해도 안 되고, 생각과 말이 순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38~42절에서 예수는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에게조차 보복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43~45절에서는 한술 더 뜹니다. 누군가 나를 때리거나 공격할 때 단순히 반격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일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가 어느 정도인지 알리기 위해 예수는 가능한 최고의 수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누가 이런 의를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이것은 결코 정상적인 의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정상적인 의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의입니다. 이어지는 몇 구절은 그것이 왜 그리스도인의 의인지를 알려 줄 것입니다. 핵심 단어는 “이같이 한즉”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침 뱉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같이 한즉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자와 싫어하는 자 모두에게 햇빛과 비를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심지어 그분의 원수가 되는 자들에게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롬 5:8). 그리고 예수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늘 아버지와 같아지기 위해 일상에서 ‘이같이 해야’ 합니다. 엘렌 화잇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를 기쁘게 하는 사람들에게뿐 아니라 가장 흠이 많고, 잘못되었고, 죄 많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게 만든다. 하나님 가족의 일원임을 보여 주는 것들은 지상적 지위도, 출생도, 국적도, 종교적 특권도 아닌 온 인류를 감싸는 사랑, 바로 사랑입니다. 불만스러워하는 사람들과 악한 이들에게 친절하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이 하늘 왕족의 휘장이자, 가장 높으신 이의 자녀들이 그들의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확실한 징표이다”(보훈,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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