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환난 중에서

2009년 12월 2일 수요일 - 재난과 방향 상실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삼하 22:7


20
세기를 맞이한 첫 몇 년 사이에 재림 신앙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 재림신자들은 하나님을 찾으며 많이 부르짖었다.


1902
2 18
,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틀크릭 요양소가 대형 화재로 잿더미가 되며 새 세기가 시작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12 30일에는 두 번째 화재가 발생하여 리뷰 출판소와 대총회의 사무실들이 소실되었다.


배틀크릭에 다시 지을 것인가 아니면 교단 본부를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켈로그 의사는 결정적으로 요양소를 다시 더 크게 더 잘 지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가뜩이나 세계적으로 선교 확장이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는 바람에 교단이 재정적으로 파산할 지경이 되었으므로 그런 낭비성 계획에 동의할 수 없었다. 다니엘즈와 켈로그 사이에 금전 문제와 누가 지배권을 행사하느냐 하는 문제로 끝까지 대결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돈과 권력이 그들을 갈라놓은 유일한 문제는 아니었다. 이때쯤 켈로그는 신학적으로 탈선하여, 하나님을 초월적인 존재, 초자연적인 존재로 보는 대신, 사람과 자연 속에 내재한 하나의 힘으로 보는 유사 범신론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저서 <산 성전, Living Temple>에서나무에는 나무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힘이 있다. 나무에는 나무를 만드는 자, 꽃에는 꽃을 만드는 자가 들어 있다.”라고 쓸 수 있었다.


이런 범신론적 시각을 가진 것은 유독 켈로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1888년 이후 유명세를 탔던 E. J. 왜고너도 1897년 대총회 회기 중에 그리스도가하나의 나무 또는 풀로 나타났다.”고 가르쳤고, 1899년 대총회 때에는사람이 물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목욕하면 목욕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켈로그 파와 다니엘즈 파간의 싸움은 몇 해 동안 계속되었다. 엘렌 화잇은 한 동안 화해를 모색하였으나 1903년에 이르러서는 점점 더 말과 글로 다니엘즈 쪽을 지지하였다. 결국 켈로그는 배틀크릭 회중으로부터 출교를 당해 재림교회를 떠났다. 그 바람에 A. T. 존즈, E. J. 왜고너 및 기타 몇 사람들도 켈로그와 함께 교회를 떠났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환난의 때를 맞이하고 있다. 문제는 어디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예수와 그의 원칙들 뿐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예수와 그의 원칙들 뿐이다.

친구나 가족, 직장동료에게 추천하고 싶으신 분은 이곳을 클릭해주십시오
webmaster@egw.org로 추천하실 분의 메일주소를 보내주세요.

.
영원한 복음을 홈페이지로 하기 원하시면 이곳을 클릭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