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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일요일 - 부푼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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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8:14)

 

1844년은 부푼 기대감 속에 찾아왔다. 윌리엄 밀러는 한 번도 구체적인 날짜를 정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성경 연구를 통해 다니엘 8 14절의 상징적인 2,300(2,300) 1843년 무렵에 끝날 것이며 그때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나중에 그는 1844년 봄에 그 기한의 끝이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한편 새뮤얼 S. 스노는 2,300년 기간이 기원전 457년 가을에 시작해 서기 1844년 가을, 좀 더 정확하게는 1844 10 22에 끝난다고 확신했다. 그는 같은 해 8월 뉴햄프셔주 엑서터에서 개최된 밀러주의자 장막 집회에서 자신의 흥미진진한 견해를 밝혔다. 그때부터 밀러주의 운동은 다시 불이 붙었고 긴박감이 고조됐다.


밀러주의자들의 소망은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는 재림을 주제로 한 설교가 1,500~2,000번 전해진 것으로 집계됐다. 또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5~10만 명으로 추산된다. W. R. 크로스는 소극적인 참여자도 100만 명 이상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당시 미국 인구가 2천만 명이 안 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숫자다. 엄숙함이 감도는 시간이었고 사람들은 구름 사이로 오실 주님을 만나고자 준비했다.


마침내 10 22일이 되었고 밀러주의자들은 말할 수 없이 숙연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기대에 차 있었다. 과격한 흥분이나 공개적인 시위는 없었다. 그들은 각자의 집에서 주님이 오시시기만을 조용하고 끈기 있게 기다렸다. 조슈아 V. 하임스는 가까운 친구였던 윌리엄 밀러의 집에 찾아갔다. 거기에는 몇 가정이 모여 승천 바위에 주님이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계속하여 동쪽 지평선을 응시하며 재림의 징조가 눈에 띄자마자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마침내 해가 졌고 세상은 평소처럼 다시 밤의 어둠으로 뒤덮였다. 그러나 실망할 이유는 없었다. 열 처녀의 비유에 따르면 신랑은 한밤중에 오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25:6). 영생은 그들의 것이 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