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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수요일 - 능욕받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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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6).

서울 번화가 한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옆 좌석에서 식사를 하던 청년이 음식 속에 든 이물질을 씹은 모양이다. 그 청년은 주인을 불러 항의하였다. 주인은 당황해하며 죄송하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그 청년의 불평이 계속되자 이번에는 주인이 반격을 개시하였다. 주인은 멀쩡한 자기들의 음식을 타박한다며 처음의 자세를 완전히 바꿔서 그 청년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어이가 없는 청년이 당황해하는 사이에 주인은 자기들이 제공한 음식에는 처음부터 이물질이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청년의 여자 친구가 빨리 자리를 뜨자며 보챘다. 주인의 강공으로 주눅이 든 청년 남녀는 온갖 욕지거리를 들으며 죄지은 사람처럼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갔다. 옆에서 식사를 한 입장에서도 분노가 솟구쳤다. 그러나 주변에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세 팀이 있었으나 그 주인의 부당한 행태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미 불의한 주인은 이웃 식당 주인들까지 불러들여 그 청년을 핍박하고 있었다. 그 식당에서 문제의 발단과 과정을 지켜 본 입장에서 중간에 ‘이것은 아니다.’라고 나서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런데 선뜻 행동하는 양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망설였던 것은 싸움에 개입하여 함께한 식구들에게 어려움을 줄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이 어렸을 때인데 그들이 놀라고 당황할 것을 생각하니 쉽게 나서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평생을 살아오면서 그때 그 일에 올바른 편에 서서 힘을 실어 주지 못했던 비겁함이 찜찜하게 남아 있다.
성경의 위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옳은 일을 위해 굳게 선 사람들이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며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였다(히 11:26, 27). 복음을 전하던 사도들도 예수님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며 오히려 기뻐하였다(행 5:41).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은 가벼운 것으로 여기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향하여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나를 듣고 사람의 훼방을 두려워 말라. 사람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들은 옷같이 좀에게 먹힐 것이며 그들은 양털같이 벌레에게 먹힐 것이로되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사 51:7, 8), (쟁투,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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