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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수요일 - 죄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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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렘 30:17).

박혔던 못을 빼면 못 자국이 남듯이, 용서를 받았다 할지라도 마음에 남아 있는 상흔(傷痕)이 바로 죄책감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창 4:13)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다음 어디에도 그가 진심으로 회개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일이 꼬일 때마다 “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창 42:21)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은 30에 판 유다는 깊고 진실한 회개를 한 것처럼 보입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 그러나 그의 고백은 죄의 형벌이 두려워 내뱉은 넋두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라는 나단의 질책 앞에 단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통렬하게 회개합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 6:6). 그의 회개는 눈물로 침상과 요를 띄울 만큼 절절한 회개였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위협받은 형벌을 피하려는 욕망이 없었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그의 범죄의 흉악함을 보았고 그의 영혼의 더러움을 보고 그의 죄를 미워하였다”(부조 하, 456).
세익스피어의 맥베드는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고발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불안감에 떨다 자신도 병이 들었고 아내도 중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의사에게 가서 자신의 병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의사는 “이 병은 내가 고칠 병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고쳐야 할 병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죄책감은 곧 자책감(自責感)입니다. 죄책감이란 잠들어 있는 양심을 깨우는 성령의 두들김입니다. 그 두들김을 외면하면 양심은 점점 석고화 되어 갑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보이는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아물지만 영혼의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잘 낫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방치하면 몸과 영혼까지 삼켜 버립니다. 그러므로 상처는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도 못하시는 일은 고백하지 않는 죄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으나 ‘자는 척’하는 사람은 절대로 깨울 수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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