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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일요일 - 거듭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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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예수의 ‘거듭나라’는 말씀은 사실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당대 최고의 랍비였던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도덕적으로 완전했던 랍비에게 거듭남이 절실한 것이었다면 하물며 우리 같은 범인이겠습니까!
중세 천주교회는 주제넘게 그리고 겁도 없이 면죄부를 돈을 받고 팔았습니다. 독일의 도미니쿠스 수도회 탁발수사 테첼은 면죄부를 팔면서 “이 후에 범하는 죄까지도 회개할 필요 없이 사유된다.”라고 주장했습니다(D’Aubigne, b.3, ch.1). 한걸음 더 나아가 “이 면죄부는 현재 살아 있는 자뿐 아니라 이미 죽은 자도 구원할 효능이 있으며, 돈이 궤 밑에 떨어져 소리를 내는 즉시 위하여 속전을 낸 그 사람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가게 된다.”라고 보증했습니다(K.R.Hagenbach, History of the Reformation, vol, p.96).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면죄부는 테첼의 면죄부가 아니라 ‘침례’입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침례란, 아버지를 바꾸는 것입니다. 본디 우리는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서 난 사람”(요 8:44)들입니다. 그러나 침례를 받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마 3:17)로 신분이 바뀌게 됩니다. 침례란 시민권을 바꾸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 3:20). 그리고 침례란 인생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물은…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 그 결과 “전에 미워하던 것은 지금에는 사랑하게 되고 전에 사랑하던 것은 지금 미워하게”(정로, 58) 됩니다.
그리고 침례란 2000년 전 십자가에 달리셨던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고, 함께 장사되고, 함께 부활하는 경험 예식입니다. 물은 무덤을 상징하고, 그 속에 들어가 호흡이 정지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물에서 일어나는 것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기독교는 고치고 수선하는 정도의 개량 종교가 아니라 다시 태어남을 궁극으로 하는 중생의 종교입니다. “두 번 태어난 사람은 한 번 죽고,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는다.” 그렇습니다. 잘 죽어야 잘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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