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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화요일 - 역사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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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


 

변화산에서의 경험을 제자들은 평생 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하늘의 빛을 보았고, 재림의 때에 그들이 어떤 형태로 변화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지성적 정보와 감동적인 확신을 얻었다. 그러나 세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때까지는 그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했다(마 17:9). 불필요한 경탄과 호기심을 자극시켜 계시의 본질을 흐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영원한 추억의 현장이었지만 구속주의 손길을 기다리는 백성들을 위해 그들은 할 일이 있었다. 이제는 그들 앞에 나타났던 엘리야처럼 뜨거운 심령과 능력으로 일해야만 했다(눅 1:17). 그들이 산에서 내려오자 어느새 몰려왔는지 한 아버지가 벙어리 귀신 들려 고생하는 아들을 데리고 왔다.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본 변형된 그리스도의 모습을 목격한 후 믿음의 담력을 얻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떠날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오히려 귀신은 더 큰 능력으로 아들을 괴롭혔고 제자들과 예수를 조롱하였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랍비들과 서기관들과 합세하여 예수와 제자들을 조롱하자 모두의 상황은 매우 난처했다.


그때 예수께서 가까이 오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담하고 도전적이던 군중은 어둠의 정적처럼 잠잠해졌다. 여러 해 동안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가진 아버지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주님께 나아와 “할 수만 있으면” 아들을 고쳐 주시기를 탄원했다. 구주의 눈은 매우 심각한 모습으로 그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귀신을 향해 매우 엄숙한 소리로 귀신을 꾸짖으시자(눅 9:42) 그 악한 영은 소리를 지르며 그 아이를 비명과 함께 땅에 쓰러뜨린 후에 나갔다. 무리들은 이 광경을 보며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워했으나 풀이 죽은 서기관들은 도리어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났다.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은 영광과 치욕의 양극단을 보았다(소망, 429). 믿음은 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 자체는 겨자씨와 같아 생명력이 있다. 믿음은 오히려 그것의 유무(有無)로 결정된다. 주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자들”(막 9:19; 눅 9:41)이라고 책망하셨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요일 5:12). 주님께서는 비유적으로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다(마 17:20). 우리의 작은 믿음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약속에 감사드린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생명의 배아(胚芽)로 지닌 역사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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