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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금요일 - 용서는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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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요 8:7, 8).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이 많다. 가난하고 병들어 신음하는 자들, 인간이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 권리와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 그리고 불합리한 법의 적용으로 애매히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다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 19).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시의 많은 지도자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어 이리에 쫓기는 양처럼 이곳저곳을 피하여 다니셨다. 초막절의 마지막 날조차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는 계속되었고 여기저기에 함정들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예수께서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오셨을 때, 여전히 몰려드는 군중을 막을 길이 없어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군중 속에는 음모의 주인공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섞여 있었으며, 집요하게 그분의 잘못을 찾아 그를 제거하려는 노력을 쉬지 않았다. 그런 중에 한 여인이 동정심이라곤 전혀 없는 철면피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끌려 나왔다. “소수의 정의의 수호자들이 예수를 해할 함정을 만들기 위해 이 여인으로 죄를 짓게 했다”(소망, 461). 그들은 법을 준수하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면서도 법을 무시하는 자들이었다. 그 여인의 경우는 남편만이 고소할 수 있었으며, 범죄 한 상대방도 똑같이 처벌을 받아야 했다. “고소자들의 행동은 완전히 월권이었다”(소망, 461). 그러나 예수께서는 고소자들의 입장에서 고소자들을 대하시므로 고소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시기를 원하셨다. 이 엄숙한 시간에 율법에 따라 목격자들에게 먼저 그 일을 집행할 기회를 주고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 땅에 친수로 그 말씀을 글로 기록하셨다. 운명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 여인에게 마지막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장내는 조용했고 살기등등하던 철면피한 지도자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0, 11). 우리 모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들이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용서해 주셨다. 누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는가! 용서는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무 사항임을 명심하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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