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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수요일 - 주가 쓰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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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마 21:3; 막 11:3).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계셨습니다. 그러다가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두 제자를 불러 건너편 마을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 오백 년 전에 예언되었던 왕의 오심을 재현하는 방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는 그동안 그분이 취해 오셨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방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전에는 결코 허락하지도, 연출하지도 않았던 방법으로 예루살렘 입성을 시도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이렇듯 떠들썩하게 진행하려는 이유는 예수님 자신을 구속주로서 공공연히 드러내고 타락한 세상에 대한 당신의 사명의 최후를 장식할 그분의 희생에 대한 주의를 불러일으키기를 열망하셨기 때문입니다(시대의 소망, 571). 그분은 마침내 왕의 행렬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향한 왕의 행렬을 위해 예수님이 사용하고자 선택하신 것이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그것은 바로 예언된 나귀 새끼입니다(슥 9:9).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의 길에서 주님은 자신의 동반자로 볼품없는 나귀 새끼를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약하고 천한 존재와 동행하셨습니다. 보잘것없는 짐승의 등을 빌려 예루살렘까지 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런 선택과 관심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작은 것”(마 5:19, 11:11, 25:21, 23, 40, 45, 눅 7:28, 9:48, 눅 16:10, 17:2, 19:17), “모든 병과 모든 약하고”(마 4:23, 9:35, 10:1) “연약한 것”(마 8:17), 부족한 것에 큰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결정적으로 필요로 할 때 언제나 함께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오늘 말씀합니다. “주가 쓰시겠다!” 사람들은 대단한 것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주님은 약하고 천한 것을 향해 “내가 쓰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작고 연약한 우리, 내놓을 것 없는 부족한 우리를 주님이 쓰시도록 그분께 내어놓읍시다. “천국의 황금 문은 자기를 높이는 자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그것은 교만한 자들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한 문은 작은 아기가 떨리는 손으로 건드릴 때에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실물교훈, 404).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찬양대의 우렁찬 찬미 소리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인간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실물교훈,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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