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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일요일 - 쿠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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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사 64:6).

생전에 어머니께서는 ‘쿠티(cootie)’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셨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나는 그 말씀에 또 불순종할 참이다. ‘쿠티’란 속어로 머릿니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덟 살짜리 꼬마들은 만지기 싫고, 병이 옮길 것처럼 불결하거나, 불쾌한 냄새가 나는 사람에게 이 말을 사용한다. 나는 여덟 살 하고도 수십 년 나이를 더 먹었지만 아직도 그 말을 사용하고 있다. 교회에서 인사를 나누다가 “저 쿠티가 있어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눈치를 채고 악수를 생략한다. 학교에도 ‘쿠티’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있다. 옷이 지저분하고, 몸에서는 냄새가 나고, 쓸데없는 것은 많이 알고 있지만 대화는 통하지 않는 아이,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아서 늘 혼자 노는 아이가 그렇다. 나는 잘 나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쿠티’에 속하지도 않았다. 나는 쿠티로 분류된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꼈고, 거리를 두기는 했어도 늘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렇게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들 중 몇은 나와 친한 친구가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직장이나 교회, 길가, 이웃, 친척 중에서도 혼자 지내는 사람, 사회 부적응자, 괴짜 같은 사람이 있다. 공포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지금 나 자신이 그런 쿠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가? 아담과 하와가 과일나무에 걸려 넘어졌을 때부터 우리는 그런 처지였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 64:6). 더럽고 쭈글쭈글해져서 바람에 날려 다니는 존재, 한마디로 우리는 다 ‘쿠티’인 것이다. 로마서 3장에서 바울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의로울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들어 보라. 우리는 그리스도로부터 의의 두루마기를 부여받아 우리의 낡은 누더기를 교체할 수 있게 되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2~24). 창조와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다.

크리스티 K.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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