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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일요일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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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 성경 구절이 가장 유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하나님의 본질적 특성을 이 구절이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구절에 묘사된 하나님은 사랑의 존재이다. 그러나 모든 신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사람이 신을 달래기 위해 선물과 제물을 바치는 일도 있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 선교사에게 들은 기억이 난다. 구약에서도 바알과 몰렉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신들이 자신의 자녀를 제물로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어쨌든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 중에는 숭배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공포인 경우가 많다.
우주의 참하나님에게도 그와 같은 태도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교인은 하나님에 대해 딱딱하고 비판적인 부분만 구약에서 몽땅 인용한 뒤에 “하나님은 그런 분이다.”라고 소개한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따금 자신을 그렇게 나타내시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신약이라는 렌즈를 통해 구약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신약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공포로 가득한 종교는 그 이름이 무엇이든지간에 기독교가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종교를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지옥에 관한 공포, 형벌에 대한 공포, 구별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종말에 대한 무서움이 그들이 생각하는 기독교이다. 그러나 그것은 참기독교가 아니다. 우리가 전하는 것이 그런 종교라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옳게 전하지 못한 것이다. 공포의 종교는 예수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신다. 전에도 그러셨고, 지금도 그러하며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게 그분의 메시지다.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선언하는 구약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음을 읽어 보라. 출 15:13, 출 34:6, 7, 사 43:1~15, 렘 31:3, 렘 31:20 등)

로렌 사이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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