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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화요일 - 둘 사이에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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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1).


수년 간 아들이 집 밖으로 나돌았던 어느 아버지가 생각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아들은 다시 집에 돌아왔다. 그는 부모들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아들은 못 되었다. 머리는 늘 번들거리고, 문신에 귀까지 뚫고, 성격도 거친데다 몸에서는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났다. 그러나 돌아온 그 아들이 어찌나 좋던지 그를 쳐다보는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늘 뿌듯함이 엿보였다. 그는 아들의 단점을 강조하지 않고 장점을 크게 부각시켰다. 아들이 자기에게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버지의 눈에는 놀라운 변화로 보였다. 그 아버지는 은혜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 결국 그들은 다시 화목하게 되었다. 적어도 아버지 편에서는 그와 아들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도 놓여 있지 않았다.
오래된 찬미가 중 이런 가사가 있다. “아무것도, 이 세상의 헛된 꿈도, 주님과 날 막을 순 없네. …그의 사랑 작은 하나라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네. 너의 길을 예비하라. 아무것도 막을 수 없게.”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장애물을 놓는 존재는 그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작사자는 이해하고 있었다. 흔히 장애물을 던지는 장본인은 우리들이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무엇을 하든지 그를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나는 그럴 거라 생각한다.). 그 아들은 놀라운 변화의 기회를 얻었다. 거할 만한 곳, 자기를 후원하는 가족이 그에게 있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더 나은 삶의 문이 열릴지 아닐지는 최종적으로 그가 ‘받아들이기로’ 선택할지 말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것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로렌 사이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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